학생 가출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야…
* 이 글은 1997년 어느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인데, 오히려 오늘날 학교 상황
이 더 나빠진 것 같습니다. 가출을 개인적인 문제로 보지 말고, 사회구조적인 문
제로 인식하고 대응하자는 내용입니다. – 한효석 –
우리 학교는 상업계 남녀 공학 공립 학교로써, 한 학년 11반씩 총 33개 학급이
며, 학생수는 약 1,600명이고, 그 중 여학생이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 부천시
내 중학교 졸업자 중에서 성적 상위 그룹 학생이 진학하여, 부천시내 실업계 학
교 중에서 학력 수준이 높은 편에 속한다.
우리 학교 부적응 학생의 특징으로는 ‘가출’을 들 수 있다. 학교 주변 폭력이
나 진로(취업)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지 않은 것 같다.
1) 결석자가 매일 20명에서 많게는 40명에 이르고 있다.
2) 학년별 특성으로는 1학년 말에 가출이 늘기 시작하여, 2학년 1학기에 정점
에 이르렀다가 2학년 2학기에 집중적으로 정리(퇴학)되어, 3학년에 이르면 가출
학생이 현저하게 준다.
3) 계절별로는 봄·여름에 가줄이 많아 장기간 지속되며, 가을·겨울에 시도하
는 가출은 많지 않고 단기적으로 끝나는 편이다.
4) 가출했다가 돌아온 학생들이 ‘학교 졸업’을 목표로 하여 학교에 적응하고자
하는 욕구는 강하나, 그 뒤 불규칙적으로 가출을 반복하다가 자퇴하는 경우가 많
다. 친구를 동반하여 가출하는 경우도 있다.
5) 가정적으로 ‘맞벌이 가정, 결손 가정, 극빈 가정’ 학생들이 가출을 많이 하
는 편이다.
6) 가출 원인으로는 부모와 갈등이 심하다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는 것
이 제일 많다.
그러나 가출하는 학생들이 가출 이유를 공부하기 싫다거나, 부모나 교사가 싫어
서라고 해도 가출을 개인적인 문제로 봐서는 안 되며,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보
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처럼 가출 학생이 어쩌다 드물게 한두 명 있는 정
도가 아니라, 오늘날은 가출이 집단화하여 상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사회가 ‘성적, 자격증’으로 표현되는 치열한 경쟁 사회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20세기 산업 구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즉 아주 혼란스럽고 격변하는 시대인데도 사회적으로 청소년을 제대
로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사회가 점점 다원화하고 있는데도, 그런 변화를 능동적으로 인정하
기는커녕 가정은 가정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
직도 제도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만을 최고로 치면서 학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인
정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으로 부모와 학교가 학생들을 배려할 수 없게 하는 구조에도 문제가 많
다. 세계적으로 복지 예산이 최하위인 상태에서 부모들이 밤낮으로 생업에 매달
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청소년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만 부모와 함께할 뿐이
며, 정서적으로는 세파를 혼자 겪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즉 가정 내에
서 가족간 대화가 거의 없다.
더구나 교사도 학생을 도와줄 수 없다. 업무나 수업 부담이 과중하다는 것을 고
려치 않는다 해도, 지금은 담임교사 1인이 한 학급 50명 학생을 감당할 수가 없
다. 가령 한 아이와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깊이 있는 문제로 한 시간정도 상담
하기로 하면(한 학생당 1년에 평균 열 번 만나 10시간 상담), 산술적으로 500시
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담임교사는 방학과 휴일을 빼고, 매일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를 학생 상담 시간으로 잡아 놓아야 한다. 결국 지금은 담임교사가 학급 안에서
두드러지게 행동하는 학생들을 감당하기에도 바빠서, 그 외 학생들에게는 거의
손길을 주지 못한다. 말하자면 담임 교사가 1년 동안 대부분 학생들과 평균 학
생 1인당 10시간도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를 불신
하고 갈등을 겪고 있는 셈이다.
또 학교에서는 교사 개인의 역량에 따라 부적응 학생의 진로가 결정된다. 소위
헌신적인 교사를 만나면 얼마간 적응하지만, 사려 깊지 않은 교사가 담임이 되
면 거의 중도 탈락하게 된다. 청소년을 제대로 전공한 전문 상담자가 없다. 일
반 교과 교사를 뽑아 240시간 연수를 하고 상담 교사로 임명하고 있다. 실질적으
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징계하는 방식이 선도 위주로 바뀌었으나, 그 제도를 학교에서는 제대로 활용
할 수 없다. 징계 학생을 관리할 인원이 없고 마땅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문제 학생을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학교 안에서 봉사 활동이라는 이름으
로 청소를 시키거나 교사 업무를 보조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거대 학교를 없애
고, 학급 당 학생수를 줄여나가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학교
가 감당치 못하는 부분을 지역 사회와 청소년 단체가 도와주는 체제로 가야할
것 같다.
즉 청소년 상담실(전화, 편지), 금연 교실, 약물 오남용 방지 교실, 학교 부적
응자 치유 프로그램, 사회 봉사 훈련 교실, 청소년 쉼터, 미혼모 교실, 학교 폭
력 예방 교실, 비진학자 사회 적응 프로그램, 심리적성 검사 교실 등을 운영하
되 기관별로 특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