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뺑뺑이’ 돌기

제 목
광야에서 ‘뺑뺑이’ 돌기
작성일
2007-11-16
작성자

텔레비전 사극 <대조영>의 인기가 높습니다. 뛰어난 사람이 많은 어려움을 극
?복하고 끝을 행복하게 마무리하니까, 복잡한 세상에서 현대인들이 위안을 받는
?지 모릅니다. 668년에 고구려가 망하고 대조영이 698년에 발해를 세웁니다. 드
?라마에서는 지금 대조영이 고구려, 말갈, 거란 유민을 이끌고 도읍지 동모산으
?로 가는 길에 천문령에서 당나라 장수 이해고와 전투를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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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에서 영웅은 잘 드러나지만, 고구려 백성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도 지난 일제 시대로 미루어보건대 고구려 백성들은 나라를 잃고 식민지 백성으
?로 30년 동안 온갖 핍박과 설움을 겪었을 겁니다. 그런데 대조영이 당나라 손아
?귀에서 벗어나 유민들을 데리고 동모산으로 가는 광경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을 이집트에서 빼내 신이 약속한 땅으로 가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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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백성들 중에는 나라를 잃었지만, 새로운 세상에 잽싸게 적응하여 다른 사람
?보다 훨씬 잘 살던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분위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길을 따
?라 나섰지만,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대조영(또는 모세)을 비난하고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세워 독립국 백성이 되는 것보다 식민지 백성으
?로 잘 살 던 때를 더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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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모세는 광야에서 수십만 명을 데리고 40년이나 돌아다닙니다. 어디로 가
?야할지를 몰라서 그랬을까요? 모세가 백성들에게 기적을 보여주고, 때로는 협박
?을 해도 백성들은 끊임없이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지도자가 지닌 이상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사람들이 지닌 불신, 의존성, 우월감, 교만, 허
?영, 배타성, 이기심, 파벌의식 같은 못된 버릇을 고치려 했겠지요. 그런 마음으
?로 새로운 땅에 가보았자 또다른 이집트에 사는 것과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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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모세는 거친 광야에서 백성들을 40년씩이나 ‘뺑뺑이’ 돌려 거품을 뺍
?니다. 새 땅에서 새 역사를 쓰려면 서로 평등하게 배려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지
?요. 험한 광야에서 살아나가려면 갈라서지 말고 뜻을 한데 모아라, 나라를 세
?워 이상을 펴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백성들이 이를 깨닫는데 40년이나 걸렸
?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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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불안과 분열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어느 재벌 그룹은 우리나라
?를 그 재벌이 주도하는 공화국으로 만들려 합니다. 대통령 선거는 한 달이 남았
?지요. 여야가 서로 승리를 장담하면서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사람들
?은 누가 대통령이 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고, 누가 대통령이 되면 금방 통일
?이 될 것처럼 믿으면서, 대통령 선거를 전쟁처럼 치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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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런 혼란도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찾으며 겪어야 할 ‘뺑뺑
?이’로 볼 수 있습니다. 설령 모두 부자가 되고 통일이 된다 해도 우리가 이웃
?을 돌아보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혼란과 불평은 끊이지 않을 테니까요.
?알고 보면 대조영과 모세가 큰 이상을 지녔어도 30년과 40년을 보내고 백성들
?이 그 꿈에 동의하면서 비로소 꿈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말하자면 현실
?의 어려움은 미래의 꿈을 담은 씨앗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