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끝나지 않은 학교 괴담
꿈에 학교가 등장하면 대개는 악몽이기 쉽습니다. 시험 시간이 거의 끝났는데
?도 문제를 풀지 못하고 동동거리다가 잠에서 깬다든지, 과제를 발표해야 하는
?데 입도 벙긋 못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깹니다. 여름에 공포특집을 찍을 때
?여러 방송사가 학교를 찾는 것은 학교에 괴담이 많고, 그만큼 학교는 많은 사람
?들에게 기쁨과 자율보다 억압과 고통으로 기억되는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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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0일,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에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 2학
?년 학생 수백 명은 ‘엎드려 뻗쳐’를 하고 교사에게 엉덩이를 2~5대씩 맞았습
?니다. ‘두발 불량’ 때문이라고 하나, 곧 3학년이 되기 때문에 정신교육을 시
?키려고 학교에서 교육의 일환으로 그랬다고 합니다. 그 학교 교감은 ‘방학 때
?해이해진 마음에 경각심을 주기 위한 교육 활동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니, 관리자도 묵인하는 체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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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기합은 대개 한 사람의 잘못을 전체 잘못으로 돌려 어느 특정한 집단을
?체벌하는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에게는 낯설겠지만, 단체 기합은 과거 우리 사
?회에서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었지요. 군대는 아예 대놓고 기합을 주었고, 서열
?을 따지는 곳이면 공무원, 법조계, 연예인도 기합이 많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도 선배들은 기합을 주고 후배들은 그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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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하면 교실에 들어오는 교사마다, 마주치는 선배마다 단체 기합을 주어서 당
?하는 쪽은 하루에도 몇 번씩 벌을 받았습니다. 물론 고통을 주는 쪽에서는 그
?벌을 ‘교육’이라고 하며 ‘정신 무장, 긴장, 기강’을 강조하였지요. ‘아랫
?것들은 맞아야 정신 차린다. 때려야 말 듣는다.’는 생각 때문에 체벌했을 겁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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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선배들은 적당히 구실을 만들어 후배들을 가끔 한 번씩 호되게 다루었
?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뒷산에 놀러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전보다
?더 살갑게 굴다가 산에 도착하면 느닷없이 요즘 너희들이 버릇이 있느니 없느
?니 하면서 후배들에게 단체 기합을 주었습니다. 후배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
?럼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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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여 만든 질서가 진정한 질서였겠어요. 후배들은 느닷없는 짓을 하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눈길을 피했지, 존경하기 때문에 우러러 본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렇게 매를 맞고 자란 사람은 매를 배웁니다. 그리고 나중
?에 성인이 되어서도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합니
?다. 학생들을 때린 그 교사도 옛날에 선배와 교사에게 맞고 컸을 테고, 선배 교
?사가 때리는 것을 보면서 체벌을 배웠을 겁니다. 결국 폭력이 폭력을 키운 셈이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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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학교야말로 학생들이 미숙할수록 더욱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곳이
?지요. 오늘날에는 군대에서도 체벌을 못하게 합니다. 아직 그런 체벌이 남아 있
?는 곳이라면 깡패 집단 같은 곳이지요. 그런데 어느 구석에 죽은 줄 알았던
?‘체벌, 단체 기합’이 살아 있었나요? 학교에서 교육이라고 변명해도 그것은
?폭력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면 그 학교 구성원은 암묵적으로 그
?폭력에 동의한 셈입니다. 이성과 말로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아직도 밀어부쳐
?야 끽 소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섬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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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21세기 학생이 20세기 교사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청소년 독립신문 <
?바이러스>에 그 학교 어느 학생이 글을 올렸는데, 이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
?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 ‘설령, 학생들이 틀린 말을 하더라도, 정신적 수준이 아직 덜 성숙해서 그런
?것으로 이해하고 어른들은 권위적으로 무시하는 것보다, 어른들의 오랫동안 쌓
?여온 지혜를 이용한 대화와 타협으로 학생들을 설득시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