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도 독약을 먹는다

제 목
결국 나도 독약을 먹는다
작성일
2004-03-12
작성자

기업인은 남몰래 정치 자금을 대고, 정치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돈을 받습니
?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들통나면 정치인은 아무런 대가없이 받은 돈이라고 발뺌
?합니다. 어느 당에서는 대통령 선거 때 그런 돈을 800억 원이나 받았답니다. 이
?익을 따지는 장사꾼이 권력을 쥔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돈을 준다고? 불
?우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듯이? 그러니 정치인들이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낯두꺼운 사람들입니다.
?
? 어떤 사람은 가진 사람들에게 그 돈은 푼돈이나 다름없는 돈이라면서 뇌물 받
?는 것을 마치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으로 여기더군요. 그런 큰 도둑 때문에 작은
?도둑이 활개를 칩니다. 작은 도둑이 자신을 큰 도둑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하는
?도둑질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권력을 쥔 자가
?썩으면 사회에 서서히 부정부패가 퍼집니다. 결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야 일이
?처리되고, 담당자에게 뇌물을 써야 물건을 납품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대학에서 수십 억 기부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키려고 하겠습니
?까?
?
? 그러나 사회가 부정부패로 꽉 차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서민들이 감당해야 합니
?다. 뇌물을 받은 사람이 그 고마움을 갚으려고 하면서 정상적인 질서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떡값’을 받은 정치인은 뇌물을 준 기업에 유리한 정책
?을 세우거나, 국가 정책 관련 정보를 기업에 미리 귀띔합니다. ‘돈봉투’를 받은
?공무원은 여러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한 사람에게 몰아줍니다. ‘촌지’ 받
?은 교사는 학생을 골고루 사랑하지 않고 몇몇 학생을 특별히 더 챙깁니다. 기부
?금을 내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돈! 돈!’하며 살 겁니다. 이
?렇게 반듯해야 할 것이 구부러지고, 꼭 풀어야 할 것이 특혜로 묶이면서 그만큼
?사회가 황폐해지고 서민들 삶이 꼬입니다.
?
? 그래서 ‘검은 돈’은 정직한 질서를 흔드는 독약과 같습니다. 크든 작든 사람을
?죽입니다. 작은 뇌물이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정치인들은 그 자리니까
?덩어리가 컸던 것뿐이고, 나는 이 자리니까 덩어리가 작았을 뿐이지요. 결국 우
?리도 더러운 정치인과 더러운 기업인 못지 않게 그 동안 설렁탕 한 그릇에 팔려
?정직한 표를 죽였고, 무심히 돈을 건네며 내가 편하게 넘어가는 만큼 다른 한쪽
?에 고통을 주며 살았습니다.
?
? 그래도 마침 이번 검찰 수사를 계기로 정직하지 못했던 정치 자금 관행이 바로
?잡힐 것 같습니다. 유권자들도 이제는 돈을 받지 않고 정말 좋아하는 후보를 찍
?을 것 같습니다.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도 돈보다 정책이나 정치 철학으로 승부
?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내친 김에 우리끼
?리 주고받던 뇌물도 없애, 우리가 서로 고통을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
?리가 모두 서로 독약을 권하며 죽이는 일에서 벗어나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
?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