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위대한 사람

제 목
당신은 위대한 사람
작성일
2004-02-26
작성자

산을 태우고 마을을 집어삼키는 화재도 조그만 불씨에서 시작됩니다. 그냥 무심
?히 버린 담배 꽁초 불씨가 산자락으로 올라갔든지, 논두렁을 태운 뒤 꺼진 줄만
?알았는데 불씨가 살아나 낙엽을 태우며 불길로 커진 겁니다. 뭐든지 처음은 미약
?합니다.
?
? 실제로 장작 난로에 불을 때보면 신기할 때가 많지요. 난로에 제때 나무를 넣어
?주어야 불꽃을 훨훨 날리며 아름답게 탑니다. 어쩌다 한눈을 팔아 나무를 넣지
?않으면 순식간에 불꽃은 사라지고 재 속에 겨우 불씨만 깜빡입니다. 그럴 때는
?그 불씨에 젓가락처럼 가는 나무를 놓습니다. 그 위에 손가락 만한 나무를 수북
?히 놓고, 다시 그 위에 일반 장작을 쌓아놓습니다.
?
? 그러면 잠시 후에 불씨는 먼저 은근히 젓가락 같은 나뭇가지로 옮겨가고, 그 나
?뭇가지에서 다시 더 굵은 나무로 옮겨 붙은 뒤, 순식간에 불길로 커져 장작을 태
?웁니다. 불씨가 조금이라도 남으면 언제든지 아름다운 불꽃을 볼 수 있지요.
?
?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던 호주제가 요즘 같아서는 금방이라도 국회에서 개정될
?것 같습니다. 개정을 지지하는 사람이 이제는 그만큼 다수가 되었다는 뜻이지
?요. 언젠가 호주제 개정에 10년 이상 매달린 시민 운동가를 만났지요. 10년 전에
?는 사람들이 대부분 호주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답니다. 그때만 해도 이런 날이
?이렇게 자기 눈앞에 다가올 줄은 몰랐다는 거지요. 그때 그 운동가가 불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이 불씨가 되어 옆으로 불씨를 옮기고 또 옮겨 10년 만
?에 불길을 만든 셈이지요.
?
? 어느 시민 단체에서는 10년 전부터 친일 인명 사전을 만들려 하였습니다. 해방
?된 뒤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를 역사적 기록으로나마 후손들에게 남기려 한 것이
?지요. 그런데 지난 연말, 국회에서 그 사전에 쓸 예산 5억 원을 모두 삭감했습니
?다. 이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한푼두푼 모아 열하루 만에 5억 원을 만들었습니
?다. 그러니 그 시민 단체도 불씨였습니다. 아무도 역사에 눈을 돌리지 않을 때
?스스로 불씨가 되어 결국 오늘날 같은 불길을 만들어냈습니다.
?
?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 인권, 남북 대화와 통일, 청소년 문
?제 같은 일에서 불씨 같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집이 있기까
?지, 오늘날 우리가 여기에 오기까지 불씨가 되었던 집안 어른들도 있었을 테고
?요.
?
? 그러니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우리는 또다른 내일과 뒤에 올 사람을 위해
?지금 불씨로 사는 겁니다. 설령 우리가 우리 때 불꽃이 되지 못할지도 모릅니
?다. 그리고 불씨가 되지 않고 불길만 쬐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도 우리가 불씨
?로 남아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 뒤에 올 사람 중에 누군가가 좀더 큰 나뭇가지를
?보태 불길을 만들겠지요. 서두르지 마세요. 꺼지지만 마세요. 지금 불씨로만 남
?아 있어도 당신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