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식 전 문교부장관 – 불쌍한 지식인

제 목
정원식 전 문교부장관 – 불쌍한 지식인
작성일
2000-08-13
작성자

지난 8월 1일자로 ‘대한 적십자 총재’가 바뀌었어요… 정원식씨가 그만 두고 장충식
씨가 총재가 되었어요. 3년 임기가 끝나서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6월 15일 남북
성명 이후, 대한적십자사가 할 일이 많은데, 정부에서는 아무래도 낡은 인물이 이 좋
은 일들을 주도하여 전면에 서는 것이 껄적지근했을 겉 같네요…. 남북 관계의 영광
을 아무래도 자기 사람한테 돌려야 할 테니까…… 게다가 정원식씨는 이제 하도 우
려먹어 약발이 떨어질 만큼 떨어진 사람이고……

박세직씨도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장을 그만 두었다네요. 그것도 정원식씨와 같은 이
치로 떨려난 것이지요… 내후년 월드컵 축구 개막식에 박세직씨가 나서서 손을 흔든
다면, 현정부로서는 죽 쑤어서 개주는 꼴이라 생각했겠지요. 5공과 6공 인물, 지금은
자민련 소속. 정원식씨에 비하면 비교적 일찍 그만 두는 셈이지요…..

정원식씨는 관운이 참 좋아요…. 새 정권에서도 요직을 맡아 지금까지 월급 받고 지
내다니…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1997년 8월에 취임했다는 소리인데, 그 해 정권이 바
뀌었는데도 그 자리에 그냥 내버려두었으니…. 구 정권에서 국무총리까지 하던 사람
인데, 그것도 공안 정국 앞잡이로 야당을 힘들게 하던 사람인데…..

제가 정원식씨와 만날 뻔한 적이 있어요. 제가 서울대에 상담교사 강습을 받으러 88
년 11월에 서울사대에 갔는데 그때 문교부 장관으로 입각했어요. 전년도 강습생들은
강의를 들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강의를 못 들었지요. 정원식씨가 교육학, 상담학쪽으
로 대가였다네요…. 그런가 보다 했지요.

나중에 이 사람이 전교조 교사를 대량으로 해직하는데 앞장 설 줄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어쨌뜬 그 공로가 있어서인지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되었는데, 총리 입각
전 마지막 강의하러 외대 대학원에 갔다가, 전교조 해직 교사 제자들이 정원식씨에
게 ‘밀가루, 계란’을 던져 범벅이 되었어요.

그 다음 날부터 공안 당국은 대학생들을 ‘패륜아’로 몰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
고 정국을 휘어잡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언론사들이 대대적으로 공안 정국을 부추겼
지요. 그때 사람들을 한참 힘들게 하던 그 인간들 지금도 다 잘 살고 있습니다. 우이
씨…

김영삼 정부 시절 1995년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여당 후보로 조순씨와 맞붙었어요. 포
청전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야당 후보 조순씨 선거 전략도 포청전에 빗대었지요. 조순
씨가 압도적으로 당선되었지요. 그 조순씨는 지금 뭐 하나 몰라…. 조순씨나 정원식
씨나 불쌍하지요…… 학자로 있었으면 지금까지 존경받았을 사람들이었는데….. 아
래 글은 정원식씨가 서울시장에 입후보했을 때 제가 신문에 기고한 글이에요. 정원식
씨는 이런 저를 무지하게 싫었을 거예요…

정원식씨는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로 상담 분야에 학문적 업적이 뛰
어난 분이었다. 그러나 문교부 장관이 되어 ‘전교조 사태’를 다루면서 정치가로 변하
기 시작하여, 외대 ‘밀가루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나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출판한 <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의 저자이며 현직 고교 교
사로, 나이는 마흔 하나이고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전교조와 전혀 관련
이 없는 평범한 교사이니, 이 글을 읽는 분은 편견을 가질 것 없다. 아래 내용은 내
가 상담 교사로 서울에 참석하여 내 귀로 정원식씨한테 직접 들은 것이다.

지난 1994년 9월 23일 9:30 – 16:30까지 재단 법인 <청소년 대화의 광장(원장: 서울
대 박성수 교수)>이 주최하여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청소년 상담과 상담학 발전
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제2회 청소년 상담학 세미나가 있었다. 그때 정원식씨
는 이 재단 법인 고문으로 참석하여, 세미나를 하기 전에 격려사를 하였다.

정원식씨는 격려사 중에 이런 말을 했다. ‘과거 전교조 문제는 내 본의가 아니었고,
자신이 교사 해직의 주무 장관으로 관련되어 지금도 가슴 아프다. 그 분들께 미안할
뿐이다…… 원래 정치를 모르는 내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아 그 동안 연구를 멀리하
고 살았다. 지금에서야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내 본업으로 돌아 온 것 같아 기쁘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이 길에 몰두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제 정원식 씨는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이 말과 전혀 다른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년 9월 이후 학문적 성과를 얼마나 쌓았는지 정원식 씨에게 묻고 싶다. 정
치를 모른다는 사람이 왜 자꾸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본업
(상담학)을 버리고 왜 자꾸 딴 길로 가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정원식 씨를 통해 이
시대 지식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나는 가슴 아프다.

그리고 정원식씨가 재작년(1998) 11월에 부천에 와서 ‘바람직한 자녀 지도를 위한 특
강’을 하였어요. 그래서 그때 글을 써서 부천 지역 신문에 투고하였어요. 아래 글은
지역 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해방 이후 최대라고 할 수 있는 교사 구조 조정을 코앞에 두고, 지
금 나이 많은 교사들이 초긴장을 하고 있다. 그런 속에 얼마 전 부천에 ‘바람직한 자
녀 지도를 위한 부모 교육’ 강사로 전에 문교부장관을 지냈던 분이 오셨다. 이 분이
문교부장관이었을 때 전교조 교사 수천 명이 해임되었으니, 이 분이 누구인지 알 만
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우리 나라는 지금에 와서야 아이엠에프 간섭을 받으며 사회를 재편하고 있지만, 이미
선진국은 80년대말 사회 구조와 산업 구조 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물론 교육
방식도 그 이전과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그 나라는 그때 벌써 안이한 교육 방식으로
세계 속에서 개인이며 국가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80년대
말 전교조 사태는 세계 변화에 발맞추어 우리가 살아 왔던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방식
을 버리고, 창의적이며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자는 몸짓이었던 셈이다.

그 당시 정부는 군인 출신 노태우씨가 대통령으로 있어, 군대 같은 사회 생활이 우리
네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교조 주장대로 창의와 인간다운 생활을 허용하
는 것은 권위적인 정권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정권을 수호하
는 차원에서 전교조를 탄압하기 시작하였고, 국민들에게 이런 사태를 빨리 받아들이
게 하려고 전교조 교사를 빨갱이로 몰아 부친 것이었다.

이때 앞장 선 사람이 엊그제 부천을 방문한 정원식 문교부장관이었다. 그 당시 전교
조 교사를 색출하는 방법으로 문교부가 학교장에게 일러준 지침에 ‘학부모가 주는 촌
지를 거부하는 교사, 아이들을 잘 이해해주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교사, 우리 문
화를 일러주는 교사’ 등이 들어 있었다. 정말 그 지침대로 촌지를 거부하는 교사가 잘
렸으며, 아이들을 잘 이해해 주던 교사가 해임되었고, 우리 풍물을 지도하던 교사가
파면되었다.

교직 사회에 소금 구실을 하던 교사 수천 명이 파면되자, 교직 사회가 급격히 썩기 시
작하였다. 아무 돈이나 덥썩덥썩 받아먹고, 아이들을 잘 때리며, 서양 문화를 널리 전
파하는 교사가 능력 있는 교사로 평가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람 사는 이치를 가
르치는 것보다 윗사람에게 처세를 잘하는 것이 교사들에게는 더 소중했다. 심지어 아
이들과 학부모에 대한 사랑, 동료애조차 없는 사람이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지금 교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개혁을 거부하는 집단쯤으로 남아 있는 것도 지난 10년
을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10년을 권위적인 정권이 주장하는
대로 믿고 교사가 부패하도록 방치한 국민들도 책임의 한 부분을 통감해야 한다.

부천에 왔다 간 전직 문교부장관이 학부모들에게 어떤 내용을 강의했는지 궁금하다.
그 분이 우리 사회 윤리의 밑뿌리를 흔들어 놓는 바람에 결국 오늘날 아이엠에프 상황
을 불러온 셈인데, 요즈음 얼마나 도덕적 책임을 느끼는지 또 얼마나 반성을 하고 사
는지 정말 알고 싶다.

불쌍한 정원식씨… 관운이 좋으면 뭐해…. 평생 살아온 자기 가치관을 제 스스로 부
정하고 허물어야 했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출가하여 당신 때문
에 고통 받은 사람들을 위해 속죄하고 사시오…….너무 점잖게 충고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