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대책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한효석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최근 “비상대책위원회”가 인기를 끕니다. 이
프로그램은 대책위원회인데도 비상 상황을 맞이하여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
람들을 풍자합니다. 예를 들어 범인이 인질을 잡고 돈을 요구하거나 테러로 사
회를 흔듭니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해야할 사람들은 이 상황을 피하려
하거나 엉뚱한 허풍으로 시간을 낭비합니다. 심지어 대통령이 등장하여 그 사태
를 인기 관리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최근 전국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비싼 대학 등록
금 때문에 젊은이를 부양하는 가정이 무너집니다. 보릿고개가 없어졌다면서도
아직도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대책이 없거
나, 핑계를 대며 이 현실을 대충 넘기려 합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풍자하
듯, 나라는 왜 있고 전문가들은 무엇을 할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네 삶이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늘 비상 상황이 아닌 것은 없습니
다. 궁핍, 질병, 갈등, 불화, 좌절, 실패, 위기, 난관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뿐이지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지요. 그러므로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전문가
들처럼 ‘안 된다, 해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불러라’하면서 적당히 넘어가
기로 하면 우리네 삶은 말 그대로 ‘고통스런 바다(苦海)’일 뿐입니다.
어쩌면 전문가들은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질범이 돈과
차를 달라고 할 때 그 요구를 그냥 들어주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많은 전
문가들이 모여 자기 위치에 따라 나중에 겪어야할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한 마디
씩 합니다. 돈을 주지 말자고 하고, 인질이 다쳐서는 안 된다고 하고, 선례를
만들지 말자며 범인에게 강력하게 대처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의견이 모이니 대책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담아 ‘잘’ 해결하는 방법을 못 찾습니다. 이 상황이 얼른 끝나기만 기다리는
무대책위원회가 될 수밖에 없지요. 마치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거들 수 없어 방황하는 아들이자 남편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안 된
다고 피하려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핑계만 보일 겁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
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라고도 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 높은 사람, 있는 사
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안 된다, 못 한다’하지 말고 그 상황에 놓인 사람에
게 직접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 상황에서 쌀을 주어야 할지, 돈을 주
어야 할지 결정하기 쉬울 테니까요. 사람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사람이 풀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