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제 목
총선 이후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작성일
2000-03-13
작성자

희망과 절망 사이

국민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대표를 뽑겠다며 거리에 나서는 것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대개는 뭔가 바뀌지 않겠냐고 기대를 거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많
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정치에 냉소적이었던 젊은이들조
차 이번 선거에 80% 이상 참여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는 국민 누
구나 이대로는 안된다며 뭔가 바꿀 시점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운동 결과가 좋지 않을까 싶어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저렇
게 정열적으로 나섰는데도 제대로 바꾸지 못할 때, 상처받지 않을까’를 염려하
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역 정서가 판칠 때 이성을 잃고 사람을 바꾸지 못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운동은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니므로, 걱
정을 덜어도 좋을 것 같다.

1996년 교육부에서 초중고에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학교 문제를 학교장 혼자 결정하지 말고, 학부모, 교사, 지역 인사와 함께 상의
하여 결정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일부 학교장은 상의를 간섭으로 받아들여
서 학운위 제도를 마음으로 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육부에서 지시하는 대로
학운위를 구성하되, 학운위원으로는 학교장 결정에 무조건 따라줄 사람을 앉히
고 싶어했다.

그 첫 시도가 학교 내규를 학교장 입맛에 맞게 정하는 일이었다. 그때 학운위
첫 내규는 전 교사들이 모여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던 학교
는 학교장이 혼자 내규를 정하였고, 그 규정에 따라 교사 대표, 학부모 대표를
선출하였다.

이에 몇몇 교사들이 이의를 제기하여 전 교사가 모여 다시 내규를 정할 때, 학
교장은 교사들에게 강요하기도 하고, 애원하기도 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규를 정하려 하였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이틀 간 격론을 치르고 학운위 내규
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새 내규에 따라 선출한 교사 대표, 학부모 대표가 이전
에 뽑은 대표와 거의 비슷하였다. 그때 그 학교장은 몹시 기뻐했겠지만, 교사들
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크게 실망하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번에 치를 총선 이후 상황이 그때 내가 겪었던 상황과 비슷
할 것 같다. 많은 국민들이 힘써 노력했는데도 ‘돈, 지역 감정, 바람’을 뛰어넘
지 못해, 여전히 그렇고 그런 인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이것을 희망으로 보아야 할까? 그때 우리는 정말 얻은 것이 하나
도 없었을까? 아니다. 그 당시 교사들은 눈앞에 놓인 현실을 당장 바꾸지는 못했
어도, 여러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학운위가 그 전에 있었던 육성회와는 엄청나게 다른 기구라는 사실을 어
느 학교보다 빨리,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둘째, 기득권 세력이 아주 강력하여 기득권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셋째,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 혈기로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익혔다.
넷째, 무엇이든지 자기가 주체가 되어 끈질기게 실천해야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
다.

그때 그 교사들은 민들레 꽃씨처럼 뿔뿔이 흩어져, 지금쯤 어디선가 자기가 놓
인 곳에서 변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 국민 앞에 어
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실망할 일은 없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국민들은 희망을
보기 시작하면서, 국민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낡고 썩은 무리들에게 계
속 일깨워 줄 것이기 때문이다. (2000.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