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에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까?

제 목
학기 초에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까?
작성일
2000-04-3
작성자

강 선생님께

사람들이 우리 학교 옆에 있는 밭을 메워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데 그 넓은 곳
을 어느 새 거의 다 채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밖을 내다봅니다. 참 신기해
요. 여러 사람들이 땀방울을 흘리니까, 채소밭이 아파트가 들어설 커다란 집터
가 되는군요. 조금만 더 있으면 그 빈 터에 고층 아파트를 쑥쑥 올리겠지요. 덤
프 트럭이 오가는 것을 보며 우리 교사들이 하는 일도 저렇게 변화를 확실히 느
낄 수 있는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지금쯤이면 강 선생님은 작년 이맘때처럼 또 ‘제 자신이 너무 무능하고 한심해
서 교직을 떠나고 싶다.’고 말씀하실 듯합니다. 4월이면 학기 초를 지나 어설픔
이 가시면서 아이들이 조금씩 제 자리를 잡는 때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문제가
싹트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니까요.

그 중에서도 교사와 아이, 아이들과 아이들의 충돌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부
분입니다. 그러고 보면 교사가 가르치는 일로만 고민을 한다면 행복한 고민이라
하겠어요.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사람 사는 방식이 엄청나게 바뀌었는데도 학교
는 여전히 십 년 전, 이십 년 전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교사
에게 요구하는 것은 왜 이렇게 많은지요?

제가 강 선생님께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고 권하고 있지만, 저
도 아이들 때문에 강 선생님 못지 않게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직에서 벗
어나고 싶습니다. 재작년에는 어쩌다 학생주임을 하였는데 그 당시 중3인 우리
집 딸아이가 막 웃더군요. 아빠가 학주(학생주임)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냐는
뜻이겠지요. 그런 딸아이를 봐서라도 학주를 한 번 멋지게 해보자는 생각을 했지
요.

그러나 3월부터 쏟아져 나오는 무단 결석·가출 따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면 사유를 묻고 행정 절차를 밟아 교내에서 봉사 활동을 시
켰습니다. 언젠가 말썽을 피운 남학생들에게 봉사 활동을 시키는데, 말이 봉사
활동을 시키는 것이지, 교사가 벌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더군요. 그 아이에게 열
시간 봉사 활동을 시키려면 열 시간을 같이 지내야 하니까요.

계속 지도할 수 없을 때 그 아이에게 작업 내용을 설명한 뒤 알아서 하라고 맡
겨 놓으면, 제가 없는 틈을 이용하여 학교 밖으로 나가 과자를 사먹고 들어옵니
다. 설득하기도 하고 살살 달래기도 하여 한 시간 동안 작업하다가 가사실 청소
를 지시해 놓고 돌아서면 가사실에 있는 그릇을 꺼내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물론 복도 청소를 시킬 때도 제가 옆에 서있지 않으면 아이들끼리 대걸레를 들
고 칼 싸움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 담배를 피우기도 합니다. 언젠
가는 봉사 활동하는 아이들에게 운동장 정리를 시켰는데 그 아이들이 모두 달아
나 버려, 제가 손수레를 끌고가 삽과 괭이를 실어다 창고에 갖다 놓았던 적도 있
었어요.

기가 막히지요. 제가 남교사이고 학생주임이며 교육 경력이 20년이 넘었는데
도, 아이들이 저를 어려워 하지 않으니 그 아이들이 여교사, 초임 교사들을 어떻
게 대하겠어요. 그 분들도 강 선생님처럼 자책하다가 절망하다가 어떤 때는 아이
들을 데리고 와 ‘학생부에서 제발 이 애를 처리해 달라.’고 하소연합니다. 한 반
에서 같이 생활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으니 그 학생을 퇴학시켜 달라는 소리이
지요.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이 가까워 오자 저는 학교 가는 것이 무서웠어요. 알
고 보니 어떤 여선생님은 개학할 때쯤이면 설사를 한다고 합니다. 개학하여 학
급 아이들과 만날 생각을 하니 즐겁고 반갑기는커녕 소화가 안되더라는 것이지
요. 일본에서 일부 교사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교육부를 많이 원망했어요. 한 학급에 아이들을 50명씩이나 넣어 놓고 어떻게
인성 지도를 하라는 말이냐, 개성이 다양한 아이들을 통제하려고만 하니 그게 말
이나 되냐 따위였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우리 학교 옆에 있는 ‘사회복지관’에서
학교사회사업가(상담원) 두 분이 오시더니 아이들을 복지관으로 보내 달라는 겁
니다. ‘잘됐다’ 싶더군요. 청소년을 깊이 연구한 분들이니 잘 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내 처지가 이것 저것을 따질 형편이 아니고 그때는 지푸라
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지요.

그래서 우선 학교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던 아이부터 골라, 학교장과 부모님과
학생의 동의를 얻어 복지관에 보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복지관에 1주일 다녀
온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싹싹해지는가 하면, 담임 말에 순종하기도 했
습니다. 나중에는 그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복지관에 가서 자기 진로를 확인하
고 돌아오겠다고 자원하는 학생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2학기를 보냈어요. 반 년 동안 35명이 다녀왔습니다. 그 중에 학교를 그
만 둔 애가 여덟 명이나 됩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학교를 그만 두고도 아이들
이 복지관에는 가끔 연락을 한다는 거지요. 그 중 어떤 애는 학교에서 뛰쳐나가
복지관에 가 있기도 해요. 그래도 어쨌거나 그 뒤로 제가 아이들과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가 담임과 학생주임을 잘 만나면 졸업을 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
면 졸업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 뭔가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이제는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벗어나 아이들 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더군요. 그 아이들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
는 전문가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양호교사 한 분이 전교생을 상
대하듯이, 각 학교에서 전문상담교사 한 분이 한 해 30명만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신다면 부적응 학생 문제는 거의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교육부만 탓하지 말고 학교 주변 기관을 적극 이용하자고 생각했지요.
다행히 그곳 도움을 크게 받아 1년을 잘 넘겼어요. 속 썩일 만한 아이들이 조용
하니까 학교 전체가 조용하더군요. 작년 한 해 동안 학생 처벌 횟수가 뚝 떨어졌
어요. 재작년에 아이들이 복지관에 다녀온 결과인 듯해요. 말하자면 제도적으로
좀더 뒷받침을 한다면 ‘학생을 다독거리는 방식’이 충분히 자리잡을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고, 교사나 학생들이 모두 미비한 교육 여건의 피해자구나 싶었습
니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 학교 어느 여선생님이 아이와 그 부모 문제로 고민하고 있
었어요. 교육 경력이 거의 20년이 다 되었는데 교직을 그만 둘까 하더군요. 교
장 선생님께 찾아가서 학급 담임을 못하겠다고 말했답니다. 강 선생님보다 더 절
박했을지도 몰라요. 제가 그 선생님께 주어진 운명을 피하지 말라고 했어요. 두
고두고 후회할 거라고요.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서로 손바닥을 펼쳐 부딪치며 ‘파
이팅’을 외쳤지요.

다행히 지금은 수습이 되었어요. 애와 부모가 와서 그 선생님께 사과하고 담임
선생님이 패죽여도(?) 아무 말 안하며 학교에 잘 다니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약속이 며칠이나 갈지 모르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그러므로 오늘날 교육 풍토에서 제가 강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교사들
이 자기가 올해 해야 할 몫을 확실히 짚어 보고 생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제가 짚어볼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어요. 강 선
생님도 같이 생각해 봅시다.

첫째, 오늘날 청소년들도 시대의 피해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 동안 교육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아 교육이 시대 흐름에 많이 뒤떨어
져 있잖습니까? 먹고사는 일과 대학 입시에만 매달렸던 교육의 후유증을 지금 교
사와 부모와 학생들이 겪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떤 아
이일지라도 그 부모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들째, 어딘가에는 자상한 교사의 손길이 꼭 필요한 아이가 있을 겁니다. 교육
이 많이 황폐해질수록 내 몫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시다. 나 만난 것을
평생 고마워할 아이가 있으니 주변을 둘러봅시다. 즉 ‘올해는 우리 반에서 세 명
만 건져도 좋다.’고 목표를 작게 잡읍시다.

셋째, 내가 교사로서 모든 것을 다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합시다. 옛날에는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 말고도 틈틈이 책상이나 걸상을 고쳤지만, 지금은 학교 기
사님에게 모두 부탁하잖습니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반 어느 아이
를 옆에 있는 비담임 교사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학교 주변 상담 기
관 전문가에게 보내기도 합시다.

넷째, 동료 교사들이 모두다 훌륭한 분이며 그 분들과 힘을 합해 한 아이를 성
숙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오늘날 교사들이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구조적으로 미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분을 다
른 분들이 메꾸어 주고 있는 셈이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다른 교사에게 털
어놓고 묻고 상의하며 생활합시다.

다섯째, 아이들을 믿고 솔직하게 대하며 모든 일을 아이들과 상의하여 결정합시
다. 그래서 2학기쯤에는 담임 교사가 없어도 잘 굴러가는 학급이 되어야겠지
요. ‘왕년에는 나도 인기가 있었는데…..’하며 추억을 되새겨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는 폐쇄된 사회라서 수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조금만 해주어도 누구나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지요. 이제 풍토가 바뀌었으니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여 아이들에게 새롭게 인기를 얻는 교사가 되어 봅시다.

여섯째, 학부모님은 모두 우리 이웃입니다. 학력이나 경제력에 상관없이 소중
한 분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을 그 곳
선생님이 어떻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는가를 생각하여 나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의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애정을 쏟아야 합니다.

강 선생님,
늘 건강하셔야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인기는커녕 자기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짜증만 늡니다. 교육이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천천히
간다 해도 언젠가 그 끝이 보일 겁니다. 많이 힘들더라도 묵묵히 실천하며 그때
를 기다려 봅시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9년 4월 부천에서 한 효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