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장 동네 쌀집 딸 – 이연진

제 목
(수필) 시장 동네 쌀집 딸 – 이연진
작성일
2000-04-3
작성자

이연진(주부, 부천시 원미구 상1동 한아름마을)

아버지는 지금도 이태원에서 쌀가게를 하고 있다. 내가 태어난 해부터 시작했으
니 지금까지 40년 동안 가게를 지켜 온 셈이 된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장사를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니들과 나를 ‘시장 동네 쌀집 딸’이라 불렀고, 나에게
는 ‘쌀집 막내딸’이라는 호칭이 덤으로 붙여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
름한 작업복으로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는 마음도 편하지 않았고, 쌀가루가 먼지
처럼 수북하게 쌓여있는 가게도 싫어했으며, 교복을 차려 입고 가게에 들렀을
때 허옇게 묻어나는 쌀겨도 싫어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아버지의 딸’로 남아있
기를 원했다. 그리고 내 자신은 교양과 품위가 있는 집안에서 자란 막내딸로 생
각하며 한없이 커져 가는 욕심을 채우려고 하였다.

학창 시절에는 무용 학원에 다니는 친구를 부러워하며 춤을 추고 싶었다. 그림
도 배우고 싶었으며 피아노도 남부럽지 않게 치고 싶었다. 그러나 동네에서 ‘구
두쇠 아저씨’로 소문난 아버지는 좀처럼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6남매
모두가 부모님 사랑에 서운한 것이 많았겠지만 나는 유독 보이지 않는 부모님의
손길을 기다리며 아쉬워하였다. 그래서 많은 욕심과 고집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한때 무용을 배우기도하고 그림 공부를 하기도 했다.그러나 부유한 집안에서 곱
게 자란 친구들의 생활 방식은 나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상대적
으로 가난을 느끼게 되어 부모님을 더욱 힘들게 하였으며 그 때문에 미움을 사기
도 하였다. 여러 가지 욕구들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내 자신이 무능
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에 ‘시장 동네 쌀집 딸’을 탓하며 마음을 정리하고 욕심
을 가라앉히곤 하였다.

결혼을 하면서 나는 ‘시장 동네 쌀집 딸’이라는 말을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책을 가까이 하려 했으며 품위 있는 말을 쓰려고 노
력하였다. 앉을 때 무릎을 꿇고 앉아 발목 안쪽에 거칠게 만져지는 굳은살이 있
는데도 고집스럽게 이것을 지켜나갔다.

이러한 습성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덕이 아니었다. 그래서 음식점이나 사람들
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누군가 ‘편히 앉으세요.’라는 말을 건네 오면 부끄러운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 앉곤 하였다.

그러다 언젠가 성당 일을 보시는 구역장님께서 ‘마르타, 네가 시장 동네 쌀집
딸이라니 정말 놀라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나는 그분의 표정 어딘가에
숨어 있는 위선적이고 욕심 많은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처럼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살덩어리처
럼 내 몸 한 구석에 남아 있었던 셈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쌀에 대해서 좋으니 나쁘니 하며 평을 해보지 않았
다. 그러면서도 재래 시장 안에 있는 쌀집 앞에서 남들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지
나쳐 본 적이 없었다. 요즘도 무거운 쌀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현관문을 들어서
는 쌀집 아저씨를 보면 어떻게 대할 줄 몰라 연실 고개를 굽실거리며 허둥대곤
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 스스로 쌀집 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누
가 불러주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시장 동네 쌀집 딸’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