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교사’라는 말이 지닌 허구….
‘우수 교사 선발’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1997년 11월 28일 교육행정 연수원에서 교육 개혁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위
해 ’97 교육정책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러 대학교수가 발제자로 참석하여 향후
교육 개혁 방향에 대해 발표하였는데, 아래 내용은 서울대 진 아무개 교수가 ‘우
수 교사의 개념과 실천적 조건’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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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교사는 투철한 사명감과 윤리 의식, 전문적 교수 능력과 식견을 모두 갖
춘 교사이다. 하지만 어느 하나에 우선 순위를 둔다면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식견
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수한 교사로 교직 사회를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 양성과
선발, 배치, 보수, 근무 조건, 연수 등 모든 영역에서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만, 그 중에서 (1)우수 교사의 선발과 (2)연수 강화가 가장 중요하다.
(1) 우수 교사를 선발하기 위해 첫째는 교육에 관한 지식, 기술, 식견, 둘째는
발전 가능성, 셋째는 읽기, 쓰기, 말하기를 기본으로 하는 의사 소통 능력을 검
증해야 한다.
특히 교사로서의 발전 가능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자신이 가르칠 교과목
의 내용과 수업 방법, 혹은 교육 일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지식과 기술을 늘
려 나가고, 이것의 성장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누구보다 의사 소통 능력이 좋아야 한다. 이를 위해 신규 교사
는 필기 시험, 논문 시험, 실험 실습, 집단 토론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
해 신중히 선발해야 한다.
(2) 교원 연수는 연수 인원을 늘리기보다 소수에게라도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교사에게만 연수를 받도록 해야 한
다. 또 연수 프로, 연수 기관, 연수 시기, 연수 방법에 관한 모든 선택권을 교사
에게 돌려줘야 한다. (‘한국교육신문’ 97. 12. 3일자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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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듯하나 진 교수가 발표한 내용의 전체 윤곽을 살펴보라는 뜻에서 신문
에 실려 있는 내용을 모두다 옮겼다. 진 교수의 주장은 한 마디로 ‘우수 교사는
전문성과 식견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서 (자질이 떨
어지지 않도록) 틈틈이 가르쳐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런 것은 진 교수 혼자만의 생각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초중고 교사
를 바라보는 편견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는 ‘교육 개혁을 제대
로 하지 못하는 것은 현장 교사가 우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런 사람들이 초중고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전 부천 관내에는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교사가 10여 명이 있었다. 그
사람 중에 계약 기간 1년을 채우고 다시 재계약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 원
어민 교사들이 각자 사정이 있어 재계약하지 않았겠으나, 그 사정 중에는 원어
민 본인과 관련 없는 ‘화가 나더라, 미치겠더라, 신기하더라(기적 같더라)’같은
것도 있었다.
어느 원어민 교사는 어느 학교에 가든지 한국 학생들이 묻는 질문이 모두 똑같
아서 나중에는 ‘화가 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물어 볼 것이 없나 싶기도 하
고, 학생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조차 모두 똑같더라는 것이다.
더구나 50명을 앉혀 놓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고도 한
다. 자기네 상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너
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미칠 것 같았다’고 하였다. 그래도 한국 교사들은 아이들
을 비교적 잘 다루고 있어 그 사실이 정말 ‘신기하였다(기적 같았다)’고 하였다.
‘우수 교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원어민 교사들이 지적한 말들을 들려주
고 싶다. 아니 진 교수가 직접 한국 초중고 교실에 들어가 50명 아이들을 가르
쳐 보고 ‘우수한 교사’ 운운하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발언인가를 느꼈으면 좋
겠다. 지금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는 것이 교육 여건 때문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교사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책임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계 일부에서 ‘연수를 강화하여 연수 실적에 따라 봉급이나 승진에 차등을
두겠다’는 것도 교육 여건을 개선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교사의 질
을 불신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말하자면 학급당 학생수 감축이나, 교사와
학생의 수업시수 감축, 교사 1인당 학생수 감축, 인성·특기 교육 강화와 같은
본질을 외면하고, ‘봉급을 더 받고 싶으면 더 열심히 근무하라’는 식으로 교육
풍토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이는 교육을 교육적 태도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논리를 적용하여 경
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려는 관료적 발상이다. 물론 지금 우리 나라 교육 여건은
교사들을 아무리 경쟁시키고 쥐어짜도 효율이 전혀 오르지 않는 ‘한계 효용 제
로’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증거로는 일부 ‘우수 교사’에게 국가에서 지불하던 ‘특별 상여금’을 IMF 사
태가 일어나자마자 모두 반납하자고 전 교사들이 결의한 사실을 들 수 있다. ‘특
별 상여금 반납’을 서운해하는 교사들이 거의 없었다. 받았던 사람이나 안 받았
던 사람들이나 대부분 ‘특별 상여금’이 ‘우수 교사’와 거의 관련 없이 지불되어
온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교사를 선발하자’는 말이 가능한 것일까? 사범대학 4년을 마친 스무
살 초반 사람들의 교육에 관한 식견, 발전 가능성을 뚜렷이 잴 수 있을까? 선발
하는 사람들이 우수 교사를 한 눈에 척 알아볼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나중에 어
떤 교사가 되리라는 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의 식견을 재는 기준
이라는 것이 결국 기존 질서를 고수하는 보수적인 것은 아닐까? 필기 시험, 논
문 시험, 실험 실습으로 뽑는다면 교사를 학력만으로 평가하여 혹시 ‘각종 시험
의 귀재’를 뽑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우수한 교사를 선발하자’는 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말이다. 어떤 사람
을 교사로 뽑아 어떤 자리에 가서도 우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틀로써 국가가
뒷받침해야 옳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 좀더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게 하거
나, 안식년(몇 년에 한 번씩 쉬게 하는 제도)을 주어 새로운 지식을 재충전할
수 있게 한다든지, 교원들이 크고 작은 모임을 만들어 참여하고 틈틈이 공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장려하는 것들이 국가가 해야 할 몫이다.
국가가 이런 곳에 투자하지 않고, 처음부터 ‘우수하지 못한 교사’를 뽑아 교육
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교사에게 돌리는 비겁한 짓
이다. 더구나 이런 진실을 알고 있는 지식인들이 엉뚱한 주장으로 여러 사람들
을 미혹시키는 짓이야말로 ‘반교육적인’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