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아니라 김대중을 미워해야 한다..

제 목
이해찬이 아니라 김대중을 미워해야 한다..
작성일
2000-09-13
작성자

교사 중에서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을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사람
은 이해찬이 미워서 우스개 소리로 ‘해찬들’표 고추장도 안 먹는다고 한다. 그분
들 말로는 이해찬이 교육에 ‘교’자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손대는 바람에 교육 풍
토가 많이 황폐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해찬을 미워하는 교사들이 자기 위치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오늘
날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학교장이 책임지고 있다. 상을 주거나 벌을 주
거나, 심지어 학교 어디에 어떤 나무 하나 심는 것도 학교장이 지시한다. 교사
가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학교장 지시에 따라 마지못해 하는 일도 많다. 학생 한
명을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데도 학교장 결재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교사 한 사람이 학교에서 확실하게 책임지는 일도 없고, 어떤 작은
일 하나도 교장 지시 없이는 추진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해찬 장관이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 어떤 변혁을 자기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었을까? 대통
령 결재 없이 이런저런 조치를 내렸을까?

우리 나라 정치 구조는 대통령중심제로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고 일한다. 그
러므로 이해찬이 무슨 짓을 하는지 대통령이 몰랐다해도 그 책임을 대통령이 져
야 한다. 더구나 그 당시 이해찬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집행하는 한 부서의 책
임자였다. 그러므로 이해찬이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때리는 사람보다 말리는 사람이 더 밉다는 말이 있지만, 진짜 미워하려면
김대중을 미워해야 한다.

교육에 ‘교’자도 모르는 이해찬이 장관을 했다고…. 그건 말할 것도 못된다.
그 이전에 교육의 ‘교’자를 잘 알던 장관들은 업무를 잘 수행했는지? 서울대 교
수 출신 장관, 교육학과 출신 장관들이 교육을 더 망가뜨려 놓지 않았던가? 이해
찬이 여러 변혁을 추진하여 교사를 힘들게 하였다고 하지만, 이해찬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령 이해찬이 굉장히 무식하다 해도 온 국민이 반대하는 것을 추진할 수 없
다. 예를 들어 그 당시 교사 정년 문제에 대해 교사 단체에서 단축을 반대하는
것 이상으로 학부모 단체에서는 찬성하고 있었다. 어느 학부모 단체에서는 교사
정년을 더 줄여 55세로 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학부모와 사회가 학교
를 불신하고 있었다. 여론 조사에서 교사 정년을 줄이자는 쪽이 다수를 차지하였
다.

10여 년 전 전교조 교사를 1500명 가량 잘랐을 때 온 나라가 흔들렸다. 생니를
뽑았기 때문이다. 해직된 분들을 존경하던 동료를 10명으로 치면, 해직은 교사
15,000명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정부가 단행한 것이었다. 또 그 15,000명 교사
를 믿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100명으로 치면 ‘전교조 교사 해직’은 나라 전체로
는 150만 명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라가 어수선해지고 ‘전교조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년 단축으로 학교를 그만 둔 학교장이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이다. 우리가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다가 싸움에 지는 바람에 사회
체제가 바뀌어 졸지에 그 많은 사람들이 숙청된 것이 아니다. 평시에 아주 자연
스럽게 3만 명이 퇴직하였다. 그런데도 나라가 조용하다. 그것은 일부 교사만 이
해찬을 미워하고 흥분하였을 뿐이지, 나라 전체로는 조기 퇴직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전교조 사태 때처럼 생니를 뽑은 것이 아니다.

이완용은 일본을 업고 임금을 협박하여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다. 우리가
고종 임금을 미워하지 않고 이완용을 미워하는 것은 그 당시 고종은 이완용을 어
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임금이 이완용을 파면시킬 수 있었는데도 그냥
놔둔 것이라면, 오늘날 사람들은 당연히 ‘고종의 무능’을 욕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마치 자기는 몰랐던 것처럼 나중에 관계 장관을 쉽게 자르던 사람이
었다. 그 김영삼이 지금까지 왜 욕먹는지를 생각해 보라.

엊그제 교육부총리에 임명된 사람이 한 달이 안되어 잘렸다. 여러 가지로 자질
이 되지 않는다는 여론 때문에 대통령이 새로 바꾸었다. 그 사람을 욕할 것이 아
니라, 그런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한 대통령을 욕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
에게 추천한 사람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해
찬의 정책적 과오를 묻고 싶거든, 그 사람을 장관으로 부렸던 김대중에게 물어
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