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원인부터 생각해 보자
지난 1999년 3월, 각 학교에서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학교 나름대로 ‘교육벌’이
라는 이름으로 체벌 기준을 만들었다. 벌점 몇 점이 되면 어떤 벌을 준다거나,
어떤 도구로 어디를 몇 대 이상 못 때리며, 누가 때리며 따위를 구체적으로 규정
하는 식이었다. 과거에 교사가 스스로 판단하여 체벌하던 것에 비하면 조금 진전
된 셈이다.
물론 학부모 단체는 이런 기준조차 부정하고 있다. 교사들이 좀더 노력하면 학
생들을 충분히 이성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데, 교사들이 너무 손쉽게 체벌에 의존
하여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 단체는 체벌을 교사 개인이 지
닌 폭력성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체벌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기 쉽다.
오늘날처럼 체벌이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은 정부에서 그 동안 교육에 제대로 투
자하지 않아 드러난 것이다. 교사와 학생에게 문제가 많고 과거보다 심성이 폭력
적으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말하자면 교사, 학생, 학부모가 모두 체벌 피해자
들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 심신이 옛날과 같지 않다. 요즘 아이들이 과거처럼 어른들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한두 번 이야기한다고 듣는 것도 아니다. 좋게 말하면 요즘
아이들은 자기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동한다. 그러므
로 정부에서는 교사들이 아이들과 좀더 많이 만나 설득할 수 있도록 교육 여건
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학교 여건과 구조는 몇십 년 전 상황과 거의 다름없
다. ’19세기 교육 여건’ 속에서 ’20세기 교사들’은 한 교실에 어른을 어려워하
지 않는 ’21세기 학생’ 50명을 앉혀 놓고 나라에서 정해준 수업 내용을 전달해
야 한다.
오늘날 가정에서 부모가 제 아이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형편을 고려하면, 이
50명이란 숫자는 교사 한 사람이 자기 능력을 제아무리 힘껏 발휘한다 해도 ‘인
성 교육’은커녕 학생 50명을 떠들지 못하도록 제압하며 ‘획일적인 지식’ 하나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숫자이다.
교사가 안 가르치기로 하면 모르되, 뭐라도 하나 가르치기로 하면 50명을 어떤
방법으로든 제압하고 수업해야 하니까 극단적인 방법인 체벌을 동원하는 것이
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교실을 더 짓고, 교사를 더 뽑아 교사 일인당 학생수, 한 학
급당 학생수, 일인당 학습량을 줄여서 서구 선진국처럼 교사와 학생이 이성적으
로 만날 수 여건을 갖추어 주어야 했다. 또는 전문 상담자(학교 사회 사업자)를
학교에 배치하여 일반 교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학생들을 맡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 50명의 인격을 존중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들에게 획기적이고 특수한 수업 기술을 일러주어야 했다. 말하자면 한두 번
이야기해서 알아듣게 하는 비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교사들과 학
생들이 좀더 자주 만나서 이성적인 인간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대화 시간이라도
충분히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가가 해야 할 이런 몫을 국가에서 제대로 실천한 적이 없었
다. 교사들이 각자 알아서 지도하라며 방치해 왔을 뿐이다. 오히려 오늘날 교사
들은 옛날에 비해 ‘영어교육 강화, 정보교육 강화’ 같은 정부 지시에 가르쳐야
할 학습량이 더욱 늘었으며, 쏟아지는 공문에 파묻혀 상급 관청에서 내려오는 지
침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래서 옛날보다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이
오히려 더 적어지고, 학생 문제로 고민하기는커녕 전문 서적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날 그날을 겨우 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교육 여건과 구조를 개선하려 하지 않고 학생들을 인간
적으로 잘 가르치는 교사에게 ‘성과급’이란 이름으로 돈을 더 주겠다며 체벌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교사가 이를 악물고 대들어도 안 되는 상황을 정부가 잘
알면서 교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국민을 속이고 있
다. 그리고 학부모들도 오늘날 학교 풍토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모르고, “TV는 사
랑을 싣고”에 나오는 옛 교사들이 마치 변치 않는 교사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
다.
따라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이성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학생들을 왜 때리는가’를
자세히 알아보아야 한다. 지금처럼 ‘어떻게 때리자’만 논의하고 있어서는 체벌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가 교육 여건과 구조를 개선하려 하
지 않으면서 체벌 교사를 문책하겠다는 식으로 나간다면, 교사들은 이제 학생들
이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말거나, 알아듣거나 말거나, 말썽을 부리거나 말거나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