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 학력이 떨어졌다?
며칠 전에 교육평가원에서 올해 수능 시험을 어렵게 낸다고 발표하여 또다시 많은 사
람들 가슴을 철렁하게 했습니다. 작년에 수능 시험이 쉬워서 “점수가 인플레되었
다”고 여러 언론이 교육평가원을 아주 맹렬하게 비난했지요. 그래도 그때 평가원장
은 “수능이 쉬워야 공교육이 산다”고 당당히 주장하며 올해도 수능 시험을 쉽게 낸다
고 했어요.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환영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 그 평가원장이 바뀌더
니, 그 원칙도 바뀌었습니다.
수능 시험을 어렵게 내겠다는 것은 요즘 고등학생이 너무 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랍니
다. 작년 학생보다 학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는군요. 쉽게 말해 작년 모의고사 시험
지로 평가해 보니 어떤 과목은 평균 20점까지도 떨어졌다는 겁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어른들을 보면 저는 참 답답합니다. 지금 고등학생은 비록 1-2년
차이이긴 하지만, 올 2월에 졸업한 학생들과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해왔어요.
배운 내용도 많이 다르고, 사는 법도 달랐지요. 예를 들어 과거에는 수업 시간에 선생
님 설명을 들으며 밑줄을 긋거나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이 보편적인 공부법이었지요. 그
러나 요즈음 학생은 수행 평가를 준비하며 조사한 결과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식
으로 공부합니다. 강제로 시키던 자율 학습도 없어졌지요. 물론 한 가지만 열심히 해
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하여,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한 학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즘 고등학생들이 살아온 방식을 반영하여 요즘 학생들을 평가해야 그 동
안 어떻게 살았으며 얼마나 공부했는지를 정확히 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식을 달
달 외던 시절에 마련한 기준으로 올 고등학생들을 평가하고 학력이 떨어졌다는 겁니
다. 고추 기르며 살아온 사람에게 배추 기르는 법을 묻고는 대답하지 못한다고는 요
즘 농부는 옛날보다 실력이 없다고 탓하는 것과 같지요.
그리고 대부분 어른들은 지금 고등학교 학생들이 그전 학생들보다 학교에서 가르치
지 않는 것에 재주가 많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컴퓨터 워드 실력도 좋고, 인터넷 채
팅, 춤과 노래, 만화, 요리, 스포츠 따위에 재주 있는 학생이 많습니다. 예컨대 옛날
에는 고등학생이 되어야 사주던 휴대전화를 지금 대부분 초등학생들이 들고 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요즘 초등학생도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산다는 뜻이지요.
말하자면 지금 청소년은 옛날처럼 학교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전보다
단편적인 학력이 조금 떨어졌다 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요즘 청소
년은 그 전보다 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육평가원에는 공연
히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올해 수능 시험도 쉽게 냈으면 좋겠네요. 그렇지 않
으면 요즘 청소년이 살아온 것을 반영하여 수능 시험 과목에 워드, 채팅, 춤과 노래,
스포츠를 집어 넣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