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와 이완용에서 벗어나기
나라가 많이 어수선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걸어 왔다는 수십 년 민주화 역정
도 “처조카”라는 단어 하나에 그만 맥을 못추는군요. 옛날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현철 씨가 국정에 관여하였다고 사람들이 김현철 씨를 “소통령”이라고 하였지
요. 그런데 이번 대통령 “처조카”가 벌인 “보물선 놀이”에 국방부며, 국정원까
지 동원되었다고 어떤 분은 우리 나라에 “중통령”이 있었다고 비꼬더군요.
사람들은 “처조카”라는 단어가 단지 혈연 관계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통
령 비서를 제 개인 비서 부리듯이 쓸 수 있는 단어였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겁니
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아직도 우리가 임금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겠지요. 덮어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도, 그 정도가 너
무 지나쳤다. 말하자면 우리가 아무리 그러려니 하는 부분이 있었다 쳐도, 해도
너무 했다 싶은 겁니다.
그러나 돌이켜 봅시다. 학교장이 평교사인 당신에게 일요일 자기 딸 결혼식에
참석하여 사회를 봐달라고 합니다. 회사 사장이 평사원인 당신에게 장모 장례식
창구에 앉아 접수를 보라고 합니다. 그런 상관들은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다
만 공무로 아랫사람인 직원을 마치 제 종 부리듯이 자기 개인 일을 보게 하는 것
입니다.
그 상관들은 그런 사람이라 칩시다. 어때요? 당신은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있습
니까? 오히려 아랫사람이 나서서 그 정도 일은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
는지요? 만약 그런 상황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면 당신은 처조카 부탁을 들어
준 국가정보원 간부, 대통령 비서, 해군 장성과 같은 부류 사람입니다. 높은 자
리에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공사를 구별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말하자면 사람들은 이완용을 매국노라 욕하면서, 자기도 이완용 못지 않다는 사
실을 모르더군요. 자기가 이완용과 다른 것은 단지 나라 팔아먹을 기회가 주어지
지 않았다는 것뿐이지요. 그래서 입만 살아 깨끗한 척, 고상한 척 하는 사람을
두고, 어떤 사람은 “너는 타락할 새가 없어서 타락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매섭
게 다그치는 분도 있어요.
그러니 이번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가 말이나 제도로 그냥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
는 것만이라도 깨달았다면 우리가 큰 공부를 한 것으로 쳐야지요. 민주주의는 시
민들이 정교하게 감시하고 참여해야 발전하는 제도잖아요? 해방 이후 민주주의
를 배우고 민주 국가로 가자고 하면서 우리는 아직까지 조그만 일조차 공사를 구
별하지 못해요. 그리고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을 정교하게 감시하고 시정하는 데
우리가 너무나 무관심했어요.
예수와 국가를 팔아먹은 사람이 옛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지금 우리가
예수와 부처도 팔고, 국가와 애국심을 이용하여 먹고사는 것은 아닌지 늘 반성하
며 살아야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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