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
퇴직 날짜가 작년 3월 1일자였으니,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퇴직한 것 같지 않고 긴 방학을 보내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 안팎 구
분 없이 물흐르는 대로 조용히 산 탓이겠지.
그래도 확실히 달라진 것은 교장, 교감,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과도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퇴직 당시에는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싫었다. 권태로움에 익숙한 사람, 불합리한
것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 작은 이익에 목숨을 거는 사람, 분별없이
말을 뱉는 사람, 무식하면서도 고집스런 사람, 이익에 따라 심하게 바뀌는 사
람….
교직을 떠나 장사를 하니 좋은 점
1.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 쓰레기를 줍고 치워야 한다. 나무 난로에 넣을
장작을 전기톱으로 토막낸다. 일하는 사람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곳을 뒷바라지
한다(연장 정돈하기, 청소하기, 마당 정리하기). 움직이는 것은 전부 내 일을 하
는 것이다. 그 덕분에 거품(6킬로그램)이 빠져 지금은 몸무게가 73킬로그램쯤 나
간다. 몸이 가벼워 좋다. 나왔던 배가 홀쭉해졌다. 체력과 지구력이 좋아졌다.
아내도 좋아한다. *^^*.
2. 마음이 편하다. – 퇴근 시간이 되면 칼같이 학교를 벗어났다. 특별한 일이 없
으면 학교에 남아있기 싫었다. 근무 중 빈 시간에는 학교 옆에 있는 우체국에라
도 다녀와야 마음이 편했다. 집에 있다고 뭐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몸(특히 손)이 항상 뜨거웠는데, 이제는 내복을 입어야 겨울을
난다.
3. 논의한 것을 바로 실천할 수 있다. – 그 전에는 내가 소속된 교직 사회(조직)
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장인 나와 종업원이 의견을 모으기
만 하면 뭐든지 바로 해볼 수 있다. 바깥 변화에 쉽게 대처할 수 있다. 이상향
(공동체 사회, 복지 사회)을 향해 나갈 수 있다.
4.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 사람들이 밥을 먹으러 오지, 나를 만나러 오는 것
은 아니다. 그래도 어쩌다 손님이 툭 던진 말 중에 새겨둘 만한 것이 있다. 그
런 사람들의 말벗이라도 될라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향기에 젖는다. 괴팍
한 손님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5. 대자연 속에서 산다. – 전원주택에서 산다.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곳에서 산다. 개를 여러 마리 키워도 표가 나지 않는다. 까치 소리, 꿩 우는 소
리를 들으며 산다. 땅에 심은 대로, 물을 주는 대로 거둘 수 있다.
우리 집에 오신 조무하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
(법륜 스님 말씀이라며…)
빈 배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
어느 강에 배 두 척이 있었다..
내가 그 중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참이었다.
그런데 저쪽 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러다가 서로 부딪치지 싶어서
그 배에 대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그 배는 막무가내로 내가 탄 배로 다가왔다..
온 힘을 다해 간신히 그 배를 피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떤 놈이 이렇게 말을 들어먹지 않나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식은땀을 흘리던 생각을 하면 죽이고 싶었다.
그 배로 건너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허허 싶었다.
나는 빈 배에 대고 악을 썼던 것이다..
인생이란 것이
상대가 없는데도
헛것을 두고 저 혼자 미워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를 피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배를 피해야 했다.
모든 것에서 내가 주체였다. 내가 문제였다.
——
이 이야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
“나는 부드러운 사람인데, 사람들이 왜 성깔이 있다고 볼까”하고 남을 탓할 것
이 아니라,
나는 남들에게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며칠 전 군대에서 같이 훈련받던 동기가 미국에 있다며 편지를 보냈다. 그 동기
생은 “한국 사람들이 너무 일찍 몸과 마음이 늙는다”고 하였다. 군에서 직장에
서 너무 혹사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를 아시는 분들,
서두르지 말고 자기 자신을 좀더 되돌이켜 보며 사세요.
순리대로… 허리띠 풀고 마음에 여유를 지니고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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