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윤리 의식
날짜를 보니 98년 12월 30일이고, 어느 신문사에서 원고를 청탁해서 보낸 글 같
은데, 어쩌면 4년전이나 지금이나 사회 여건이 비슷한지 우리 사회가 한 치도 진
전이 없구나 싶군요..
청소년의 윤리 의식
한 효 석(부천정보산업고 교사)
아이들 문제로 부모님들과 만나면 대부분 ‘우리 애가 어릴 때는 착했는데, 커
서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나빠졌다.’고 하며 다른 집 아이 핑계를 대곤 한다. 그
러나 잘못 사귀었다는 그 아이 부모를 만나 보면 그 부모도 똑같은 대답을 한
다. 어른들이 우리집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부모인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
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 이번 일은 정말 억울한 일이며 자기 잘못이 아니라
는 식이다.
사실 어린 시절에 착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 부모 품 안에 있는 아이가 자기 의
지로 부모에게 무슨 큰 속을 썩일 수 있겠는가? 어린이가 착하다는 것은 아직 사
회성이 없어 친구와 더불어 어떤 일을 꾀할 수준이 안 되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성인이 되도록 부모 말에 순종하고 친구도 없는 사람이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일지
도 모른다.
물론 사람 사는 일에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것을 어
떻게 받아들이는 주체가 궁극적으로 당사자에게 달려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그
부모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오죽하면 옛 성인들도 같은 물을 마시고
뱀은 독을 만들고, 소는 젖을 만든다고 하였을까? 그런 부모님을 설득하다가 그
래도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 ‘왜 그 학급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나빠지지 않았느
냐?’고 질문한다. 또는 ‘그 반에 착하고 성실한 학생도 있을 텐데 왜 그런 아이
들의 영향은 받지 않느냐?’고 물어 보아야 그 부모가 더 이상 남 탓을 하지 않는
다.
정보 통신, 인터넷 사이트니 윤리 교육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
다. 전세계 인터넷 정보의 70% 이상을 북미 대륙에서 이용하며, 우리 나라는 전
세계 인터넷 정보 이용량의 1%에도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따지자
면 우리 나라는 북미는커녕 가까운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아주
미미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우리 청소년이 어쩌다 쓰는 인터넷, 컴퓨터 통신망, 정보 이용의 문제
점이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의 나쁜 점에 노출되기로 하면 대
부분 북미 청소년은 우리 기준으로 인간 말종이 되었거나, 인터넷 음란물 중독자
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사회에서 컴퓨터 통신 때문에 나빠졌다던가,
인터넷 음란 사이트 때문에 청소년 문제가 사회 문제로 드러났다고 떠들지는 않
는다.
그것은 인터넷이 생활 속에 들어와 있고, 음란물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도 그런
정보를 의젓하게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그 정보들을 있어서는 안될 것
으로 판단하고 어떻게든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 방식을 인정하되
있는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일러준 것뿐이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청소년을 영원히 어린 아이 사고 수
준에서 머무르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청소년을 단순히 보호해서는 안 되고 어른
스럽게 성숙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규제가 넘치면서
도 제대로 규제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청소년들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 한다.
입만 열면 청소년을 걱정하면서도 사회 한 쪽에서는 청소년을 유흥업소 종업원으
로 채용하여 성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그것을 좋아라 하고 즐기는 어른이 있
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오늘날 청소년이 윤리적이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해 지탄 대상이 되고 있
다면, 어른부터 그 모양으로 살면서 모범적이지 못했다고 시인하고 먼저 반성할
일이 아닌가 싶다. 성숙한 어른들이 자신을 탓하지 않고 아이 친구와 환경을 탓
하면서, 미숙한 청소년이 자신을 반성하고 성숙하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
까? 말하자면 청소년의 윤리 붕괴의 원인을 어른들이 가까운 자신에서부터 찾아
야 시정할 해법이 있는 것이지, 먼 곳과 다른 곳을 보기로 하면 방법이 전혀 없
을 것이다. (1998.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