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비추어주는 촛불처럼
구석구석 비추어주는 촛불처럼
두 여중생이 미군 탱크에 깔려죽은 지 일곱 달이 지났으면서도 아직도 속시원하
게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촛불 시위가 계속됩니다. 외국 언론에서 한국의 이
촛불 시위를 어떤 의미로 보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 시위를 앞으로는 강대국
이 작은 나라를 함부로 휘두르지 말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반
미, 주한 미군 철수”라는 구호를 자제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라크를 공격하지
말라고 미국에 항의하는 것이 그런 맥락인 셈이지요.
이 시위를 계기로 우리도 이제는 어떤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려는 ‘제국주의
적’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땅에 온 제3세계 노동자들을 함부
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돈을 벌겠다고 힘들게 우리 나라에
온 사람들의 노동과 임금을 착취하여 국제 사회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심지어
같은 동포라는 중국 조선족한테도 몹쓸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식
으로 가면 머잖아 그 사람들이 한국을 두고 촛불 시위를 하겠지요. 한때 일본인
을 돈만 아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며 부르며 국제 사
회에서 비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은 많은 돈을 들여 일본을 널리 알리
는데도 아직 그 불명예를 제대로 씻어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네 제국주의 근성 중에는 심각한 인종 차별도 포함됩니다. 1960년대까지
도 미국이 흑백 인종을 차별하였지요. 호주도 오래 전에 “백호주의”라고 하
여 백인을 우대하던 적이 있었지요.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그럴 수가 있냐고
분개하면서도, 한 편으로 백인이 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할 만큼 백인을 좋아
합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정의의 사자인 슈퍼맨이 세상을 평정하는
미국의 할리우드식 사고방식을 최선으로 여기고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많
지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백호주의”는 같은 미국 사람인데도 흑인을 우습
게 여기는 태도에서 잘 드러납니다. 심지어 우리도 동양 사람이면서 같은 동양
권에 있는 아시아 유색 인종을 야만스러운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고, 노인과 여성, 청소년 같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것도 우리 마음에 살아 있는 제국주의 근성이지요. 일부에서는 아직도 강한 것
을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며 삽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노인네는
무식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무능한 사람으로 표현되며, 청소년들은 아무 것도 모
르고 날뛰는 철부지일 뿐이지요. 게다가 여자들은 단순하고 사랑 타령이나 하
며, 장애인은 귀찮고 불쌍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남자들은 아
직도 여자 뺨을 후려치고, 강제로 입을 맞춥니다. 폭력적인 것을 사내다운 것으
로 착각합니다. “황혼 이혼”이라는 사회 현상이 남성들을 향해 여성들이 벌이
는 촛불 시위라는 것을 모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누가 뭐라고 하든 상대방을 무시하고 큰 소리로 밀어부치는
것을 좋아하지요. 타협하고 대화하는 것을 비굴하고 나약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니 북한을 한 번 손봐주자는 사람들과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사람들은 생
각이 비슷한 사람들인 셈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돈과 권세라는 힘으로
군림하며 살아온 ‘수구 세력’이라고 부릅니다. 촛불 시위가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살지 말자, 그런 식으로 살지 않겠다”며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서로 약
속하고 서로 확인하는 통과 의례가 되고 있으니, 지금 촛불 시위를 수구 세력
이 못견뎌할 만하지요. 수구 세력에게만 좋았던 세상이 끝나가는 것이 두려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