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을 권하는 사회
‘대박’을 권하는 사회
한효석
정부에서 로또 복권 값을 2천원에서 천원으로 내리고, 1등 배당금을 낮추기로
하겠다는군요. 다섯 명 중 네 명꼴로 사본 적이 있다니 로또 열기는 열풍이 아니
라 그야말로 광풍이지요. 그만큼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이 많고 로또 복권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우리 부녀도 그 대열에 끼였습니다.
서로 몰래 한 장씩 샀다가 추첨하는 날에 꺼내어 번호를 맞추어 보고는 “에이,
두 번호는커녕 한 번호도 못 맞추네.”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웃지요.
언젠가 어느 여자 분이 아버지를 회상하며 글을 썼습니다. 옛날에 아버지는 언
제나 가족의 울타리였고 반듯하게 사시던 분이었답니다. 그런 아버지가 퇴직하
고 어느 날 텔레비전 앞에서 복권 번호를 맞추어보고 있어서 그 여자 분은 실망
했다고 합니다. 고고해 보이던 아버지에게 그런 속물스러움이 있는 줄 몰랐다는
거지요.
지식인들은 로또 복권뿐만 아니라 경마, 땅투기, 카지노 같은 것을 몽땅 하나
로 묶어서 “한탕 풍토, 대박 풍토”라고 비판합니다. 국민들 정신이 그만큼 썩었
다는 거지요. 사람이면 모름지기 열심히 살면서 착실히 저축해야지, 왜 그렇게
요행수에 매달려 사느냐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
은 먹고살 만한 처지거나, 내놓고 그런 짓을 하지 못할 지위에 있는 사람일뿐입
니다.
우리 나라 사람처럼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
나 그런 사람들도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 정상적으로 대처
하기 힘듭니다. 가령 서민들은 1년에 천 만원을 모으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집주
인이 전셋값을 해마다 천 만원씩 올려 달라고 한다면 두 부부는 1년 내내 죽을힘
을 다해 돈을 벌어도 전세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성실한 사람
은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거나 기적같이 “벼락 두 번 맞을” 확률에 매달
리지 않고서는 자기 집을 장만한다거나 풍요로운 삶은 꿈꾸지 못하지요.
우리 부녀처럼 복권을 한 장 사서,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재미로 여기는 사람
들은 먹고 살 만한 사람들입니다. 원래 부자들은 복권을 아예 사지 않아도 그냥
부자입니다. 복권을 맞추어 보던 그 아버지도 시집갈 딸에게, 혼자 사는 동생에
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도 해줄 돈이 없었던 아버지였을 겁니다. 그러니 절박해
서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절박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가 잘못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