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병 문안 길 – 이경옥

제 목
(수필) 병 문안 길 – 이경옥
작성일
2000-03-31
작성자

이경옥 (주부, 부천시 거주, 반달마을)

매년 친정 외삼촌 생신 때가 되면 강원도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이 서울에 오신
다. 오실 때마다 며칠 편안하게 쉬었다가 내려가시는데 이번에는 엄마 얼굴이 어
두워 보였다. 요즘 와서 엄마가 무릎이 자주 아프시다는 소리를 하셨다. 몇 개
월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으셨지만 별 차도가 없었기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
다.

나이 들면 무릎 관절이 약해진다는 말은 들었다. 엄마는 퇴행성 관절염 초기라
서 수술하면 완치가 된다기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하셨단다.

수술 날짜가 잡혀 있는 상태라서 친정 부모님은 서둘러 강원도 집으로 다시 내
려가셨다. 며칠 지나 엄마가 수술을 했다는 연락을 받고 중2 아들 녀석을 데리
고 심야 고속에 몸을 실었다. 병원에 도착해 병실 문 앞에서 내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고동을 치고 있었다.

아들 녀석이 내 손을 꼭 잡고 병실 문을 노크했다. 무색으로 보이는 벽면에 기
대고 있는 엄마 모습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엄마!….

엄마 손을 잡는 순간 엄마 손은 떨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
리…. 그래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몇 분이 지나서 엄마는 마음이 안정이 되셨는지 외손자 녀석 손을 잡으시고 미
소를 띄우시며 ‘먼길 오느라고 힘들었겠구나. 배고플텐데 외할아버지하고 밥 먹
고 오라.’고 하셨다. 괜찮다고 해도, 그게 아니라고 재촉하셨다.

친척 분들과 교대로 식사를 끝내고 들어오니 병실에서 친척들이 서서히 빠져나
갔다. 잠깐이나마 시끌시끌하던 병실에 침묵이 감돈다. 아들 녀석과 내가 떠나
면 병실에 어떤 변화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내 마음은 무거웠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그 순간 아들 녀석이 주머니에서 무언
가 꺼내 외할머니 베개 밑에 찔러 넣고 “외할머니 맛있는 것 사드세요.”라고 말
하더니 내 손을 잡고 병실을 급하게 빠져 나가려고 했다. 아들 녀석이 “엄마 빨
리 가요. 외할아버지가 분명히 그 돈 가지고 나오실 꺼예요. 빨리 더 뛰어요.”하
였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병원을 벗어났다.

선필아! 외할머니 드린 돈 무슨 돈이니?
하고 물었더니 친척 분이 용돈 주신 것을 외할머니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구나, 마냥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던 아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견스럽다
기보다는 다 컸구나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안동 역에서 기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