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때가 좋았어…
박정희 대통령 때가 좋았어…
한효석(교사, 부천시 원미구)
오래 전에 시골에서 하숙하던 때가 있었다. 집은 여느 시골집과 다르지 않았는
데, 문간 바로 옆에 돼지우리가 있었다. 집주인은 하숙생들이 남긴 음식 찌꺼기
로 돼지를 먹였다.
그 탓에 그 집 하숙생들은 대문을 나고 들 때마다 돼지우리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돼지우리에서 나오는 돼지 똥오줌이 조그만 물줄
기가 되어 대문 밖 앞쪽을 가로질러 대문 옆 하수구로 흘러 들어갔다. 사람들이
평소에는 그 똥물줄기를 넘어 다녔다.
그러나 비라도 올라치면 돼지우리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마당에 자욱히 깔리
고, 대문 앞은 진흙과 돼지 똥오줌으로 범벅이 되었다. 구두와 바지에 묻은 진흙
에서도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그래서 하숙생들은 비가 오면 까치발을 하고 걷거
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펄쩍 뛰어 똥바닥을 피하느라고 난리였다..
그래도 괴로워하는 사람은 이 집에 출입하는 하숙생과 손님뿐이지, 이 집 식구
들은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몸에 밴 환경이
라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 집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돼지우리를 옮기라거나, 하수도라도 묻
어 똥오줌이 바로 하수구로 빠지게 하라고 하여도, 오히려 지적하는 사람이 당황
해 할만큼 그 집 식구들은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뭔 호들갑이냐?’는 식으
로 자신들이 사는 모습을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사는 것도 다 마찬가지다. 사회며 직장이며 가정이 비민주
적으로 굴러갈지라도 처음에만 어설프지, 조금만 지나면 그 고통에 익숙해진다.
누가 내 사고 방식을 나무라도, 오히려 그 사람을 탓하며 현실을 만족해한다.
심지어 나중에는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 때가 좋았
어.’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을 둘러싼 낡은 껍질을 깨뜨리지
못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는커녕, 그 껍질 속에 갇힌 채 죽는다는 사실을 사
람들은 깨닫지 못한다. 변해야 한다는 자체를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하숙집 주인 식구들이나 우리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들만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여
러 가지 부조리와 모순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우리가 먹고산다는 핑계를 대
며 못 본 척하고 넘어간 것은 얼마나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