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한효석

제 목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한효석
작성일
2000-05-25
작성자

이름 : 한효석 ( ) 날짜 : 2000-05-25 오후 11:42:46 조회 : 157

우리네 사는 일이 연속극도 아닌데 날마다 뭐 짠한 일이 있을라구요. 그저 폭폭한 일만 없어도 좋지요. 요즘 어째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아 맥도 못 추스르고 사는 것 같습니까? 시간을 내어 일부러라도 일상을 털어보세요.

1995년 제가 한참 직장에서 학교일로 학교장과 싸울 때라 직장살이도 그렇고 해서 기분을 바꿀 겸하여 ‘대학로에 한 번 가자, 가자’ 하다가, 개천절 공휴를 이용하여 대학로에 갔지요.

이 사진은 양희경이 다른 연극무대에서 찍은 것들이지요. ‘늙은 창녀의 노래’는 1995년 9월 30일부터에서 공연하였습니다. 원래는 송기원의 작품이었으나, 양희경의 일인극(모노 드라마)으로 만들었지요. 어쨌든 우리 부부는 모처럼 부부만의 시간을 내어 대학로에 가서 눈품도 팔고, 한껏 멋을 내어 고급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먹기도 하고 오붓한(?) 시간을 즐겼어요. 물론 고급음식점이 몸에 맞지 않아 어색했지요.

그리고 시간이 되어 극장에 가니 사람들로 꽉 찼더군요. 원 작품이 꽤 알려져 있는데다가 양희경이 펼칠 진지한 열정을 기대한 탓인지 얼마 안 되는 객석이 시간도 되기 전에 찬 것이지요.

통로에 간이 의자도 놓고 ,그것도 모자라 좌석 맨 앞 줄에 널빤지를 걸쳐 자리를 마련하여 앉았습니다. 뒤에 듣기로는 11월 19일까지 약 50일간 공연하였는데, 공연마다 표가 매진되었다고 해요. 우리 두 사람은 한 사람에 15,000원씩 3만원을 내고 들어갔어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가도 좋은지’ 묻는 소리가 들립니다. 예, 그렇습니다. 창녀가 방에 있는 손님을 부르면서 연극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서서히 무대 위 어둠이 걷히면 손바닥만한 방이 드러납니다. 그 방에서 90분 동안 양희경 혼자서 주거니받거니 말을 쏟아냅니다.

(줄거리) 우리네 삶이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 한 처녀가 가출합니다. 서울에 가지도 못하고 송정리 역에서 여자를 꾀어 팔아먹는 남자에게 속아 목포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창녀로 20여 년을 보냅니다.

어느 날 어느 낯선 사내가 늙은 창녀를 찾습니다. 그래서 이 연극 처음에 늙은 창녀가 손님 방을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지요. 손님과 소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창녀는 처음으로 지난 날을 털어놓습니다.

창녀가 뱉는 말에 관객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저도 여기저기 여러 대목에서 바보처럼 많이 울었습니다. 우리 가락에 맞추어 중간 중간에 양희경이 노래하기도 합니다. 양희경은 언니 양희은 못지 않게 노래를 잘 합니다. 송기원 시에 붙여 김상철이 작곡한 가락들입니다. 그 곡들도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하나만 소개할게요.

-살 붙 이-
나이가 마흔이 넘응께
이런 징헌 디도 정이 들어라우
열여덟 살짜리 처녀가
남자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와
오매, 이십 년이 넘었구만이라우
꼭 돈 땜시 그란달 것도 없이
손님들이 모다 남같지 않어서
안즉까장 여그를 못 떠나라우
썩은 몸둥어리도 좋다고
탐허는 손님들이
인자는 참말로 살붙이 같어라우

늙은 창녀는 자기 썩은 몸둥어리마저 없으면 그나마 외로워 할 남자들이 이제는 남같지 않다고 합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 또 이 시들을 읽고 ‘늙은 창녀한테서 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셨답니다. 다른 사람들도 어느 직업에 몰두하여 20년이 넘으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교사가 20년을 넘기면 자기에게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정을 줄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나 그 학생들에게 남같지 않은 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니, 지겨워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늙은 창녀의 노래는 사랑의 완성이다’라고 주장하는 작가의 글을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