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닭 한 마리가…- 권명옥

제 목
(수필) 닭 한 마리가…- 권명옥
작성일
2000-06-20
작성자

권명옥(주부, 부천시 원미구)

시장 갈 때 이웃과 어울려서 가는 것이 재미있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도
비슷하고 식구들 중 까다로운 성격이나 편식하는 아이에 신경을 쓰는 것에도 동
질감을 느껴 친근해져서 좋다.

게다가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저마다 다른 맛을 내는 비
결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쌈장을 만들 때 마요네즈를 섞으면 짠맛이 덜
하고 부드러워져 감칠 맛이 있다기에 상추를 사고 풋고추와 깻잎을 사서 장바구
니에 담았다. 실파를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있다고 하여 실
파까지 한 단 샀다. 식구들에게 주말 저녁을 푸짐하게 차려 줄 심산으로, 정육점
에서 삼겹살을 사고 나니 장바구니가 철철 넘친다. 주말 저녁이 풍성하리라는 생
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웅성거리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
리도 가보았다. 토종닭을 싸게 판다고 그 난리들이었다. 한 마리에 3000원하는
것을 두 마리 사면 5000원에 준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사서 나누자고 같이 온
이웃을 꼬득였다. 그리고 함께 1000원을 싸게 샀다는 알뜰한 것 같은 기분으로
닭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바구니를 펼쳐서 사온 것들을 정리하였다. 양파 자루는 베란다에 놓고, 어묵
과 햄은 냉장고에 넣고, 상추와 깻잎은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저녁은 삼겹살
을 구워 먹을 것이고…..

그런데 저 닭으로 무얼 하지? 생각 없이 사고 나니 좋은 묘안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상추를 씻고 실파를 씻고 초고추장도 만들었다. 막장을 떠다 마요네즈
를 섞어 쌈장을 만들고 저녁밥을 준비하는 동안 머리 속은 닭 생각으로 가득 했
다.

닭으로는 무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솜씨로는 물 넣고 인삼 넣어 끓이는 삼계
탕이 쉬운데, 문제는 식구들이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닭볶음은 토
막친 닭이 아니라서 내가 싫다. 아무리 죽은 닭이지만 칼로 자르기가 끔직해서
여간 거북한 게 아니다. 괜히 닭을 사서 생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날씨가 더우니 닭국물에 냉면이나 말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내일은 달콤한 냉면을 만들어 식구들에게 시원함을 대접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은 뒤 춤이 깊은 냄비에 닭을 넣고 물을 넉넉히 부었다. 닭 비
린내를 없애려고 마늘, 대파, 양파를 넣고 몸에 좋다는 대추를 넣고 인삼도 한
뿌리 넣고는 한 시간을 푹 삶았더니 뽀얀 국물이 우러났다. 깨끗한 행주를 깔고
걸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하루 밤이 지나니 차갑게 식었다. 소금과 설탕을 넣고 식
초와 겨자를 넣은 혼합된 국물이 냉면 국물 하기에 충분했다. 냉면 사리를 삶고
계란도 삶았다. 오이는 채 썰었다. 배는 너무 비쌀 것 같아서 애초에 살 생각을
안 했다. 삶은 사리를 물에 비벼 빨아서 볼이 넓은 유리 그릇에 담았다. 차게 식
힌 국물을 붓고 준비해 놓은 고명을 얹어주었더니 작은아이가 입이 귀에 걸리도
록 좋아한다.

식구들이 냉면이 시원하고 맛있다고 하여 내친 김에 가깝게 살고있는 조카딸 내
외를 불렀다. 맛이 끝내준다면서 ‘이모. 이제 냉면 집 내도 되겠다.’고 추켜 올
린다. 그래서 ‘냉면 집 개업했다 생각하고 얼마씩 받으면 적당하겠느냐고?’ 물었
다. 먹은 사람마다 제각기 냉면 맛에 따라 값은 달랐겠지만 온 가족이 맛있게 먹
은 것이 즐거웠다. 생각 없이 산, 닭 한 마리가 일요일 별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