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줌마로 살면서 -성해숙

제 목
(수필) 아줌마로 살면서 -성해숙
작성일
2000-07-5
작성자

성해숙(주부, 부천시 보람마을 아주아파트)

볼 일 때문에 밖에 나가면 아줌마 소리를 여러 번 듣게 된다 . 그 때마다 그 아
줌마 소리가 싫었다. 결혼하고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변한 호칭이 나이 많이 먹
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어색했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 아줌마 티가 나지 않게 하
려고 머리는 생머리로 묶고 옷은 귀여운 인상을 주는 그림 그려진 셔츠와 치마
만 입었다.

첫애를 임신하면서 배가 불러오자 아가씨로 착각 해 주었던 사람들이 아줌마 호
칭을 당연시 여기며 큰소리로 불러댔다. 내가 자주 가는 슈퍼, 채소 가게 아저씨
들은 물건 값을 묻는 나에게 꼭 아줌마 를 붙이며 대답했다.

첫애를 낳고 그때는 그래도 몸매가 아가씨들에게 뒤지진 않았다. 그러나 둘째아
이 낳은 뒤부터는 아랫배가 꺼지지 않아 불룩 튀어 나오고 엉덩이도 옆으로 퍼지
면서 아줌마 기본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게다가 말투도 투박하게 나오고 감정까
지 무디어지면서 아줌마로 변해갔다. 나는 차츰 변해가는 생리적 순리를 막지 못
해 아줌마 자격증을 갖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줌마 소리만은 안 듣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 자신이 아줌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지라 사람들 시선에도 곧잘 얼굴이 빨개져 곤란할 때
가 많았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지나는 골목길에 아저씨들이 많이 모여 있었
다. 그때 나는 옛날과는 달리,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 아저씨들 얼굴을 다 들
여다 보면서 걸어 나왔다. 어느 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속에서 수줍음은
사라지고 능청스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 언젠가 모처럼 백화점에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산 바지 정장을 입고 폼 잡
으며 나갔는데 주위에서 쳐다 보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
이 모이는 상가 옆을 지나 가는데도, 내 정장 차림의 맵시에는 그 어떤 사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무관심은 나에게 아줌마가 되었음을 실로 느
끼게 해 주었다.

이제는 아줌마 소리를 들으면 친숙함에 대답이 절로 나온다. 전철이나 버스 속
에서 ‘아줌마’ 부르면 날 부르는 소리가 아닌데도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가 돌
려진다. 나는 진정한 아줌마가 되면서 여자 나이중에서 아줌마 시절이 가장 아름
다운 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들 꽃다운 때가 이십 세라고는 하지만 그 꽃은 활짝 피고 나면 금방 시드
는 짧은 아름다움이다. 아줌마의 모습은 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보는 이로 하
여금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힘이 장사인 시장 아줌마, 씩씩한 식당
아줌마, 인정 많은 떡볶이 아줌마 등 하루종일 일하느라고 손에 굳은 살이 박히
고 머리위에 흙먼지가 내렸어도 이 세상 어느 꽃보다도 아름답다. 이렇듯 아줌마
들 중에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내
가족을 위하는 삶이 내 행복이라고 느낀다.

오늘 아침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나이 드신 청소부 아줌마를 만났다. ‘안녕하
세요’인사를 건네자 ‘예’하면서 정이 담뿍 담긴 눈길을 주신다. 두 아줌마의 오
가는 정겨운 눈빛이 깨끗이 닦인 승강기 안을 더욱 환하게 밝혀 준다. 마음이 따
뜻해지는 아줌마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