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드럽고 따뜻했던 손길 – 성해숙

제 목
(수필) 부드럽고 따뜻했던 손길 – 성해숙
작성일
2000-09-5
작성자

성해숙(주부, 부천시 원미구 중1동 보람마을)

얼마 전, 아버지 제삿날에 맞추어 친정집에 내려갔다. 결혼 후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아버지 제사가 돌아와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 집안 일에
얽매어 바삐 지내다 보면 아버지 기일마저도 잊고 넘어 가는 때도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막내였던 나를 가장 많이 예뻐하셨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셔서 내가 없으면 집밖에서 놀고 있는 곳까지 찾아 와서 내 입에 왕 사탕을 넣
어 주었다. 방 청소 할 때도 나를 업고 하셨다. 아버지는 청소하다가 먼지를 피
해 방구석 벽에 바짝 붙어 서 있는 나를 보면 업히라는 신호로 몸을 숙였다. 그
순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서 아버지 넓은 등에 올라탔다. 아버지는 허
허 웃으며 등위에 있는 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몸을 숙인 채 빗자루를 들고
조심조심 쓸어 나가셨다.

여름 어느 날 아버지는 친구분과 술을 드시고 온 적이 있다. 아버지가 온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나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기분 좋게 취한 아버지는 잠든
나를 깨우려고 엄마가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양 볼때기와 코를 번갈아
잡아 당겼다. 나는 억지로 일어나 눈을 비벼댔다. 눈을 못 뜨는 내 모습을 본 아
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양복 주머니에서 땅콩과 오징어를 꺼내 내 손에 가득 쥐
어 주었다. 땅콩과 오징어는 군것질 좋아하는 막내 주려고 술안주를 아껴 두었다
가 가져 오셨던 것이다.

위장병이 있는 아버지는 생전에 위가 쓰려서 많은 날을 아파하셨다. 그런 날은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불러 드렸다. 노래 제목은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로 그
당시 인기 있는 유행가였다. 아버지는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 부르시곤 하였다.
노래를 다 부른 뒤 아버지 기분을 더 돋우기 위해 빨리 커서 여군이 되면 오층
집 지어 드리고 삼베옷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가난했던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오층 집이 가장 좋고 삼베옷을 즐겨 입는 아버지를 보면서 삼베옷이 좋은 옷이라
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뒤 아버지는 위장이 갑자기 터져서 일 년간 누워만 지내시다가 내가 열 살
되던 해 겨울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엄마와 우리 삼 남매를 불
러 앉히었다. 곧 아버지는 엄마 힘을 빌려 애써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을
펴서 우리의 얼굴을 말없이 어루만져 주셨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느꼈던 아버지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임종 전 아버
지 손은 분명 차갑게 굳어가는 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
는 손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는데도 기억 속 아버지 모습은 더
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아버지와 약속한 일은 말만
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비록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었지만 아버지를 기쁘게
했던 그 말들이 아버지 생전에 할 수 있었던 효도였던 것 같다.

그 동안 아버지 제사에 소홀했던 마음이 죄송해서 정성을 다해 상에 차려 놓을
음식을 만들었다. 음식 하나하나에 갖은 정성을 기울이는 것을 본 엄마는 “너그
아버지 오늘 막내 와서 좋아하것다.”하셨다. 실로 오랜만에 친정집에 와서 제사
상을 마주하니 아버지가 옆에서 대견하게 여기며 환하게 웃고 계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