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과 ‘썰렁함’ 사이
’쿨’과 ‘썰렁함’ 사이
‘쿨’은 요즘의 세태와 대중문화를 설명해주는 핵심적 코드다. 〈나는 쿨한 여
자가 좋다〉, 〈쿨 재즈〉, 〈푸는 방법이 한눈에 보이는 쿨 수학〉 등 책 제목
에도 쿨이 들어가야 ‘쿨’하게 보이는 세상이다. 배우자가 바람이 나도 징징대
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찾아 떠나는 여자야말로 요즘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쿨한 여성의 표상이다.
쿨이란 말처럼 도무지 종잡기 어려운 단어도 없지만, 이 표현을 역사적·사회학
적 맥락에서 분석한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쿨〉(딕 파운틴, 데이비
드 로빈스 지음)이란 책을 보면, ‘공식적 가치에 진지하게 맞서는 대안적 가치
의 집합개념’이라고 다소 난해하게 정의돼 있다. 그리고 쿨의 요소는 이런 것들
이다. 권위에 대한 거부와 반항, 강렬한 감정과 격렬한 정서, 당대 주류문화에
서 정당성을 얻지 못하거나 적용되기 어려운 신념, 자기파괴적 성격, 독립적이
고 강한 개성, 역설적 초연함 등.
그러면 쿨이라는 개념을 정치의 영역에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 문화에는 문외한
인 주제에, 게다가 대중문화의 코드를 정치에 갖다붙이는 것이 무리임을 알면서
도 만용을 무릅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이런 쿨의 특징들이 노무현 대통령
의 특성과 겹치는 대목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분명히 ‘쿨한 정치인’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쿨한
세대’의 열광적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권위에 대한 생
래적인 거부감, 주류와의 끊임없는 불화, 민주당 분당 사태 등에서 보여지는 자
기파괴적일 정도의 정치 행보, 격렬한 자기표현, 걸핏하면 ‘대통령직 걸기’를
하면서도 놀랄 만큼 초연한 역설적 태도 등은 쿨하다는 표현을 선사하기에 부족
함이 없다. 무엇보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개성’ 자체가 쿨하
다. 위에서 언급한 책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쿨한 정치인으로 케네디와 클린턴
대통령 딱 두 사람만을 꼽았지만, 이들도 노 대통령에 비하면 가히 ‘족탈불급’
이다.
우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통령의 말’부터 살펴보자. 신세대적 표현을 빌
려 표현하자면 노 대통령은 ‘말짱’, 바로 ‘말의 짱’이라 할 만하다. 이를 두
고 한쪽에서는 경박, 경솔, 오만, 심지어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으로 사납
게 비판한다. 하지만 무게를 잡지 않는 태도, 격식의 파괴, 어디에 구속되지 않
는 가벼움이야말로 쿨의 기본적 특성이다. 그래서 ‘재신임’ 등 대통령의 ‘문
제 발언’에 대해서는 “진짜로 쿨하다”는 열광적 반응도 무척 많다. 일부 언론
이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아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은 의도적인 흠집내기의 성격
도 있지만, 체질적으로 주류적 속성이 쿨함을 참지 못하는 탓도 크다.
그러나 말의 문제는 사실 지엽말단적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과연 ‘스타일의 쿨
함’만큼 ‘콘텐츠의 쿨함’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차례다. 외교·국방·노
동·환경 등 각종 사안에서 주류 담론을 뒤엎는 ‘건강한 반역’이 있느냐는 물
음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유보적이다. 최근 사패산 터널 문제를 매듭짓는
과정에서 나타난 스타일의 쿨함과는 대조적으로 그 결과가 지극히 썰렁한 것은
단적인 한 예다. 이라크 파병 강행 결정에서도 ‘주류의 가치에 진지하고도 당당
히 맞서는’ 쿨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언론과의 갈등도 곁가지를 둘러
싼 소모적 싸움일 뿐 정작 중요한 정책에서는 오히려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실제로 위치한 지점은 ‘쿨함과 썰렁함
사이 그 어딘가’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쿨은 결코 정치적이지 않으며 정치도 결코 쿨해질 수 없다’
는 명제를 재확인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대통령이라는 직위 자체가 원
천적으로 쿨함과의 불협화음을 내포하고 있는 탓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충
분히 감안하더라도 노 대통령이 스타일의 쿨함을 상쇄라도 하려는 듯 정책이나
인사에서 갈수록 썰렁함으로 치닫는 것은 유쾌하지 못하다. 나는 쿨한 대통령이
좋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한겨레 신문 2003.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