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토요일, 가평 현리에 있는 조종종합고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하
이에나님을 만나러 갔지요. 온 산이 봄으로 가득한 날, 우리도 상춘객이 되어 차
량 정체 틈바구니에 끼어, 직장 어느 한 사람을 씹으며, 히히닥 거리며, 거의 강
원도라 할 수 있는 가평으로 놀러 갔습니다.

도착하니 저녁 6시. 날이 어둡지는 않았지만 명승지나 산에 올라가기는 어정쩡
한 시간이라 개울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물론 음식이 나올 때까지 놀면
뭐하냐는 것이 중론이라서, 저만 빼고 일행들이 신나게 가다서기(일명 고스톱)
를 하더군요.

킬만표범님이 계속 장원을 하였어요. 나중에 맛있는 오리 구이와 닭도리탕(닭토
막찌개)이 나와서야 겨우 숨을 돌렸습니다. 하이에나 님 아는 분이 하는 음식집
이라서,엄청나게 푸짐히 먹었는데도 나중에 돈도 얼마 주지 않았어요. 이 자리
를 빌어 한 말씀 드릴게요. “보현이 엄마, 고마워요. 정말 잘 먹었어요….”

숙소에 와서 가다서기 2차를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옆에서 보니 별 것 아닌 것 같더라구요. 특히 철부지님이 끼어 있는 한, 제가 돈 잃을 일이 없지 않나 싶어 나도 해보자고 했어요. 그래
서 2000년 4월 29일이 제가 가다서기에 데뷔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 날 날밤을 샜는
데, 첫 데뷔치고는 괜찮았어요. 통산하여 5000원을 땄거든요. 물론 가다서기 선배님들
이 많이 봐주셨지요. 나중에 제 돈을 먹으려면 데뷔 때부터 초짜를 함부로 다루어서
는 안 된다는 것을 선배님들이 잘 알고 있더라구요.

가다서기 결과를 짐작해보세요. 3년 동안 어깨 너머로 봐왔지만 여전히 1할 대
를 고수하는 철부지님 완패, 3년전 1할대에서 요즘 7할로 올라서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는 킬만표범님 완승, 6할대 하이에나님은 본전 플러스 알파, 6할대 장승백
이님 완패.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은 운악산에 올라갔어요. 운악산은 산이 아주 소박합니
다. 아기자기한 맛이 들더군요. 계곡물에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이 흠이었습니
다. 외진 곳인데도 타지 사람들이 꽤 많이 오는 편이에요. 장승백이님 말로는
그 전에 등산로 입구에서 손두부/순두부를 좌판에 놓고 팔았고, ‘악’이 들어가
는 산치고 험하지 않은 산이 없다고 할 정도로 산세가 거칠었다고 해요. 물론 계
곡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지금은 등산로를 인위적으로 넓
게 밀어놓고, 입구에 순두부 식당이 난립하면서 운치가 그 전 같지 않다고 하는
군요.

올라가는 길에 민영
환 유적지에서 쉬었어요. 한말 애국지사 민영환이 말년에 자주 오던 곳을, 후대 사람
들이 기념하기 위해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았다고 하더군요.

산 꼭대기에 현등사가 있었는데 신라 시대 처음 자리를 잡았다고 하지만, 고찰
은 화재로 불타 버리고 지금 있는 절은 조선 말에 지은 작은 절입니다. 최근에
지은 가람이 ㄷ자 모양이라서 특이했습니다.

절보다는 절 뒤에
있는 칠성각에 정이 더 갔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쓰이지도 않아 지금은 많이 망
가졌는데도, 우리네 정서에 꼭 들어맞는 집이라서 그런지, 초라해 보이지도 않고 제
느낌으로는 앞에 있는 대웅전보다 더 당당하게 서있는 것 같더군요. 뿌리가 깊이 박
혀 있다고나 할까….

산에서 내려와 벚
꽃 잎이 눈처럼 날리는 원두막에서 가평 막걸리와 순두부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그리
고 ‘편지’ 영화에 나왔다는 ‘고요한 아침’ 수목원에 들르려고 했는데, 차가 워낙 많
이 밀려 수목원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되돌아 나왔지요. 우리가 함께 돌아
다녔다는 기념으로 꽃이 만발한 산장 앞에서 사진 한 방 찍었어요. 남자와 놀러온 어
느 처녀 선생님을 수목원에서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