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학부모가 즐거운 학교를 만든다…-이강윤
이름 : 이강윤 ( ) 날짜 : 2000-09-09 오후 12:56:45 조회 : 127
이강윤(택시 기사, 참교육 시민모임 운영위원)
지난 해 5월, 우리 아이가 부반장인 죄로 양천구 ㄱ초등학교 6학년 반장 엄마한테 열린 교육에 쓴다며 학교에 탁자를 사 놓자는 전화가 왔다. 또 2학년 어머니 회장은 회비 3만 원을 내라고 하고, 학부모회에서는 학교 운영에 쓴다며 10만 원을 내라는 등 세 명의 학부모한테 전화를 받은 아내는 몹시 힘들어했다.
그러던 차에 6월 3일 학부모 대의원(반강제로 가입) 총회에 나오라는 통지를 받고 직장 일로 바쁜 아내 대신 내가 참석하기로 했다. 넓은 교실에서 교감 선생님은 학부모회에서 10만 원씩 받은 돈을 되돌려 준 것에 대해 연설을 했다. 그 다음 학부모 회장이 나와 이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학부모 대의원 단합 대회를 210만 원을 들여 송추유원지로 가자고 표결에 부쳤는데, 부결되었다. 그러자 회장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기탄 없이 얘기해 보라고 주문했다.
교무실이라 그런지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자, 회장은 앉아 있는 학부모를 둘러보다가 유일한 남자 학부모인 나를 보며 한 말씀하라고 권하였다.
“저는 2학년 3반 이 터, 6학년 8반 이 란의 아빠 이 아무개입니다. 아내가 학부모회 6학년 대표한테 학교 운영에 쓴다며 10만 원을 내라는 전화를 받고 ‘자율적입니까, 강제적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자율적이라고 대답해서 ‘그럼 우리는 안내겠습니다’라고 하였지요. 그랬더니 꼭 내야 한다며 은행 계좌 번호를 알려 주었습니다. 말로는 자율적이라고 하면서 꼭 내라고 왜 강요하십니까?”
내가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자, 초면에 마치 수금사원인 양 전화했던 분들과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마이크를 잡은 김에 어머니회장, 반장 엄마 등 일련의 금품 요구 사항도 마저 공개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던가? 어쨌든 이런 일로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직장 일로 바빠 내가 대신 나왔다고 하며 덧붙여 3가지 요구 사항을 말했다.
“첫째, 학교 예산은 학교운영위에서 심의하게 되어 있는데, 앞으로 돈을 내라고 하면 저와 함께 교육청에 가서 모금해도 되는 것인지 알아봅시다. 둘째, 전화로 돈 내라고 하지 말고 서면으로 알려 주십시오. 셋째, 회의록에 누가 모금을 제안했으며, 용도는 무엇이고, 결의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밝혀 주십시오.”
내 연설(?)과 사람들의 박수 속에 회의는 끝났다. 교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학부모회장에게 여러 단체에서 만든 학운위 자료와 신문 등을 건네주면서 미안하다고 인사했다. 이왕이면 학교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이 정확한 자료를 보고 활동했으면 해서였다. 얼마 후 학부모들이 6년간 쌓였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 후련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각종 모임으로 학부모들이 학교 출입이 잦아지는 학기초면 학부모들이 여기저기서 가슴앓이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학부모들이 반성하고 개혁에 대한 의지를 지녀야 하며, 교육 관련 시민 단체가 더욱 책임지고 활동해야 할 때이다.
- 참교육시민모임 [그루풀] 98년 5월호에서 뽑았음. 원 글을 조금 줄였음 – 한효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