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 두지도 못하냐?

제 목
학교를 그만 두지도 못하냐?
작성일
2000-06-1
작성자

어제(5월 31일) 우리 학교 명퇴 담당 선생님이 공문을 보여주시대요. 명퇴가
안 된다는 겁니다. 우이씨. 그만 두는 것도 맘대로 안 되는군요. 어떡하지
요…. 이것저것 하고싶은 것이 많았는데.. 어쨌든 내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네
요..

작년 11월에 살구나무 한 그루를 사서 대문 앞자락에 심었어요.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 마땅히 놀러가실 곳이 없으시면 마당에 늘 누워 계셨는데, 아버지 돌
아가신 다음에 마당이 너무 허전하여, 빈터를 채우려고 심었지요. 7년 생 살구나
무라는데, 내년 봄(그러니까 올 봄)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을 기대하면
서…

올 봄에 살구꽃이 피었는데, 너무 이뻤어요. 매화꽃 같기도 하고, 벚꽃 같기도
합니다. 향기는 아카시 향기 같은데, 살구꽃 냄새가 훨씬 알싸합니다. 어쨌든 꽃
이 지고 살구가 달렸어요. 내심 좋아했지요. 대문 옆에 있는 이 살구나무가 자라
면 멋있겠지. 그때는 우리집을 ‘살구나무 집’이라고 해야지.


그런데 알고 보니 옆집에도, 또 그 옆집에도 살구나무가 있더라구요. 그것도 아주 큰
나무로요. 김 샜지요. 우리 동네에 살구나무가 그렇게 많은지를 그때까지도 몰랐어
요. 그나마 지난 번 우박이 떨어질 때 우리 살구가 다 떨어졌어요. 작은 나무에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였지요? 나보다 크니까 2미터 정도….


조그만 나무에 매달려 살구 열리기만 바란다고 어머니와 아내가 나란히 현관에 앉아
저를 비웃고 있습니다…. 우이씨..

명퇴 이야기는 안 하고, 왠 살구나무냐구요? 사람들이 보려고 하면 보이는데, 관심
이 없으면 안 보인다는 것이지요. 제가 살구나무를 심으니까, 비로소 옆집에도 살구나
무가 있다는 것을 안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직장을 그만 두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까, 다른 세상을 보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오늘 죽는다면, 내가 만약 직장을 그만 둔
다면, 만약 우리 부부가 헤어진다면, 만약 어머니가 내일 돌아가신다면?’ 같은
생각을 해보세요. 자신있게 적응하고 변신할 수 있을까요?

무슨일이든 예고하고 오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시간을 아껴 쓰세요. 물론 어
린 살구나무에 매달려 살구 열기를 바라서도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