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원짜리 난을 죽인 이야기…

제 목
천만 원짜리 난을 죽인 이야기…
작성일
2000-08-2
작성자

취미 중에 식물을 키우는 취미는 참 신선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물하고는 금
방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사람들이 대개 쉽게 적응할 수 있어요. 물론 똥
치우기나 털 알레르기 같은 문제도 있지만 말이지요…

식물은 아픈지, 기쁜지를 알 수가 있어야지요. 꾸준히 관찰하고 성장하는 모습
을 보면서 습성을 익혀야 하니까, 사실 성격이 차분하거나, 나이가 지긋하여 심
리적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 적합하다고나 할까….

우리 부부는 그런 면으로 젬병이에요. 제대로 못 키우겠더라구요. ㅠ.ㅠ 선인장
이나 키울까… 선인장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놔두는 것이지요. 죽어라하
고 안 죽는 식물이니까요…. 화원 옆을 지나가다가 이쁘다 싶어 화분을 사오
면, 그때뿐이고, 금방 잎이 지거나 뿌리가 썩거나 하지요…. 나중에는 화분이
없어져요…… 알고 보면 집사람이 그놈이 죽기 전에 쑥 뽑아서 남을 주거나,
아예 화분째로 남을 주어버린 것이지요…. ^^;;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도 나이 들어서인지, 요즘은 식물이 되는 것 같아요. 고
무 나무도 몇 년 동안 꼼짝 안 하더니, 작년 겨울부터 새 잎을 내더군요. 에따
모르겠다 싶어 작년 겨울에 잎을 다 따버려 앙상하던 바킬라 나무도 새 순이 여
기저기에서 쑥쑥 나오더니 지금은 몸매를 풍성하게 갖추고 있어요.

난도 여러 개가 있었어요. 지나가다 사기도 하고, 누가 선물로 주기도 하구요.
그런데 올 들어 일제히 새 순을 내는 거예요. 어떤 놈은 꽃을 피우기도 하구요.
올 봄에 모두 돌을 갈아주었지요. 지들도 여건이 좀 나아졌다 싶으니까 한 번 열
심히 살아보자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사람이든 식물이든 환경이 안되면 죽
은 듯이 있을 수밖에 없나 봐요.

난을 키우기 어렵다는 말이 다 거짓말이에요. 알고 보면 게으른 사람에게 적합
한 식물이지요. 물을 자주 안 주어도 되고, 어쩌다 생각나면 물을 주어도 좋구
요. 아는 사람 중에는 베란다에 난실을 만들고, 버티칼에 선풍기에 온도계
에…… 난이 아주 예민하다는 거예요. 난을 키우는 사람끼리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뻥이 아주 쎄요… ^0^ 난이 사람을 알아본다고도 하고, 심술
이 나면 자라다 만다고도 하고, 물로 어떻게 조절하여 괴롭히면 난이 꽃을 피운
다고도 하고… (알고 보면 잔인해요)

어떤 분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자기한테 천만 원짜리 난이 있었대요. 몰라요,
어떤 것이 천만 원짜리인지, 2천만 원짜리인지…. 있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요. 그런데 자기 집 애가 그 난을 죽였대요….. 겨울이었는데, 아이가 베란
다 창문을 열어 놓아, 그 난을 비롯하여 모든 난이 얼어죽었대요….. 집에 들
어가니까, 애 엄마하고 아이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숨도 못 쉬고 있고……
잠시 후 애가 자기 발 앞에 납작 엎드리더니 울면서 용서해 달라더라는 거지요.
죽여 달라는 식이더래요….. 애는 알고 있지요. 아빠가 그 난을 얼마나 아꼈는
지, 얼마나 정성을 쏟은 것인지, 아빠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찔했대요. 돈과 시간과 정성을 얼마나 들였는데….. 천만 원짜리 하나, 몇백
만 원짜리 몇 개, 또 몇십만 원짜리 몇십 개…. 잠깐 사이에 모두 몇천만 원이
날아간 것이지요. 지난 십수 년 세월이 날아갔고…. 다른 사람들한테 야박하다
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지고 있던 것들인데…..–;;

그래서 베란다에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웠대요. 그러다 깨달았대요. 자기가 가족
보다 난에다 정성을 더 쏟고 있었다는 사실을….. 애 엄마와 아이 얼굴이 흙빛
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모두 자기 잘못이었다는 거지요…. 내가 난을 들
고 얼마나 ‘돈돈’ 했으면 저럴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 뒤로는 난을 취미로는 키워도, 집착하지 않는대요…. 누가 달라면
잘 집어 주고요. 물론 그 사건은 그것으로 끝났어요. 아이한테 그럴 수도 있다
고 말하고 더 이상 묻지 않구요. 오히려 자기가 가족들에게 사과했다는군요. 그
동안 난 때문에 자기가 가족을 들볶아서 미안하다구요……어때요, 이 분, 멋있
지요???

그 분이 이야기하더라구요. 난을 그냥 취미로 키우라는 거예요. 온도계며 선풍
기며 난리를 피우지 말래요. 그럴수록 난이 그런 환경에 젖어서, 조금만 환경이
나빠져도 절절 맨다는 것이지요. 그냥 난 화분을 놓고 싶은 곳에 놓고 키우면,
그 난이 그 환경에 적응해서 자란다는 겁니다.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난을 키우
는 비법이라네요.

그러고 보면 사람도 그냥 놔두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부모든 교사
든 아이를 어떻게 만들려 하지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