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고려대 자퇴 학생
엊그제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무소유로 유명한 스님은 몸뚱이를 태우려
?고 일부러 나무를 베지 말라고 유언하셨습니다. 수의도 필요 없으니 입던 옷을
?입혀라, 태운 재는 철쭉나무 아래에 뿌리라고도 하였고요. 스님은 사람이 불필
?요한 것을 소유하면서 마음이 얽매인다고 했지요. 소유를 줄여야 마음이 편하다
?는 것입니다. 그 경지를 따를 수 없지만 흉내만 내도 근심을 많이 덜 것 같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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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한 편에서는 고려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3학년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면
?서 교내에 써붙인 대자보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25년 동안
?앞만 보고 살면서 수많은 경쟁을 치렀는데, 앞으로 영원히 그런 상황을 벗어나
?지 못하는 것이 끔찍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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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해도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
?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조차 못하고, 꿈도 모른 채 허덕이며 사는 것
?이 슬프다고 했습니다. 대학교조차 학벌을 파는 브로커가 되었다고 비판했습니
?다.
?
? 그래서 이 학생은 대학을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거부하겠다고 하였습
?니다. 규격화된 제품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고려대 학벌로 얻을 수 있는 이익
?을 거부하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뛰는 삶을 거부하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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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스님이 그 학생을 보며 빙긋이 웃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읽겠다고 책꽂이에서 책을 빼버리지 못하는데, 스님은 몇 권만 있으면 된다며
?책조차 소유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 학생도 언젠가 써먹을지 모를 학벌을 과
?감히 버렸으니, 스님이 보시기에 기특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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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우리 아이가 공부하러 호주로 떠났습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몇 년 뒤
?어떤 상황에 놓일지도 모르고 먼 길을 갔습니다. 그깟 것 하면서도 한국에서는
?학벌을 만들지 않고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라는 이름으
?로 자식을 걱정하며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학벌 놀음에 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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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현실에 부딪치려 하지 않는다며 취직 못한 젊은이들을
?건달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그게 젊은이 탓입니까? 만약 젊은이들이 시급 몇 천
?원을 받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현실에 부딪쳤을 때, 3년 뒤 또는 5년 뒤에
?점장이 될 수 있는 겁니까? 5년 뒤에는 나이를 먹고 취직하기가 더 어려워 그나
?마 편의점에서 잘릴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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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세대는 충분히 살았으면서도 쥔 것을 놓을 줄 모릅니다. 오히려 젊은이들
?이 쥘 수 있는 기회도 빼앗습니다. 고려대 학생은 젊은이에게 기회를 주지 않
?는 질서를 거부한 것이지요. 기존 질서를 버렸으니 새로운 세상을 열 겁니다.
?그 학생은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라고 했지만, 이미 강한 사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