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아니오 -광주 민중항쟁 28주년에 부쳐
28년 전, 1980년 5월에 광주 시민들이 신군부에 저항하여 항쟁을 벌였습니다.
?1980년이면 경기도 여주읍 같은 시골에서는 남녀 고교생이 빵집에 같이 앉아 있
?다가 학생주임에게 들키면 ‘풍기 문란’이라며 유기정학을 받던 시절입니다. 지
?금도 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면 오늘날 고등학생들이 모두 징계를 받을 판이지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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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학부모와 학생이 그런 학교 결정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일 만큼 순진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인이 광주 시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학살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신문과 방송에서는 광주에 간첩이 나타났으며, 폭
?도가 난동을 부린다고 부추겼습니다. 정부는 시중에 떠도는 말이 전부 유언비어
?라며, 광주의 참상을 말하는 사람을 처벌하겠다고 하였으며, 실제로 사람들을 구
?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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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많은 대학생이 분신 자살하였습니다. 자기 목숨을 던져 사람들에게 광주
?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도 대부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오
?히려 기성세대들은 그런 유언비어에 속지 말라고 다른 젊은이들을 꾸짖고 나무랐
?습니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면서, 그럴 리 없다는 쪽에 매달
?려 젊은이들에게 거짓말을 믿으라고 강요한 셈입니다. 그때 기성세대들은 순진함
?이 지나쳐 아주 단순하고 바보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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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기성세대를 젊은이들이 존경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니, 진실을 외치는 젊
?은이들을 기성세대가 존경해야할 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유기정학을 순진하게
?받아들이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진실을
?외면하는 기성세대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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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때 텔레비전에서 사회자는 유명 인사에게 재미 삼아 ‘예, 아니오’로 대
?답하게 합니다. ‘술을 좋아합니까? 예. 자주 마십니까? 예. 많이 마시는 편입니
?까? 아니오’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정확히 따지면 ‘좋아한다, 자주, 많이’라
?는 판단의 기준이 분명치 않으므로 ‘예, 아니오’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럴 때는 ‘글쎄요’ 또는 ‘잘 모르겠습니다.’가 더 적절하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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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세대들이 세상을 훤히 다 알지 못한다면 1980년 5월에 젊은이들이 ‘광주에
?서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라고 물었을 때,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실을 잘 알지 못하면서 한쪽 말만 듣고 진실에 다가서려
?는 젊은이를 ’빨갱이, 좌익‘으로 몰았지요. 그렇게 스스로 우스운 사람이 되고
?서,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 기
?성세대가 ’아니오‘가 아니라, ’글쎄. 잘 모르겠다.‘는 말만 했어도 젊은이들
?이 기성세대를 존경했을 겁니다. 적어도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강요한 것은 아
?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