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
“힘을 보태도 시원찮은데, 분열이라니.”
? 이 말은 민주노동당 당원이 한탄하는 말일 수 있고, 한나라당 당원이 뱉은 말
?일 수 있습니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당원들이 갈라
?서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당내 갈등도 문제지만, 한때 총재였던 사람이 자유선
?진당을 창당하여 분위기가 야릇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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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사람이 모여 살면서 뭉쳤다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사람
?들이 이익을 고리로 하여 만났던 것이라면 그 이해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생각이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지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서로 욕하고 비난
?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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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사회는 ‘전부 아니면 전무(100대 0)’ 같은 기준으로 굴러가지 않습니
?다. 적당히 기준을 정해 서로 타협하고 조화를 이룹니다. 심지어 침략과 전쟁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상대방을 ‘깡그리’ 소탕하지 않고, 아량을 베풀고 예외를
?인정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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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같이 살기로 하면 서로 ‘동거하는 기준’을 익혀야 하고, 어느 한쪽이
?라도 그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서 결혼하고도 신혼 초에 작은 일로 부딪치는 것은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실랑이를 하며 동거 기준을 하나씩 새로 잡아나
?갑니다. 이때 시어머니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 세 사람이 동거하는 기준을
?세워야 하니, 훨씬 복잡하고 정교해질 수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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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잘 안 되면 어느 날 누군가 집을 나갑니다. 만약 며느리가 없어서 시어머
?니가 나이 먹은 아들을 다시 뒷바라지하게 되면 ‘내가 좀 참을 걸.’하며 후회
?하기 쉽습니다. 남자는 집나간 아내의 손길을 아쉬워하며 ‘어머니와 아내 사이
?에서 분명히 처신할 걸.’하며 반성할 겁니다. 시어머니가 집에서 나왔다면 안정
?된 생활이 깨지면서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겠
?지요. 말하자면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이면서 서로 어떻게 동거해야할지를 익
?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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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학부모 단체가 없을 때는 교사 단체가 학부모 몫까지 대신하기도 했습니
?다. 가정이라면 남편이 어머니에게 적당히 아내를 대변한 셈이지요. 그러나 아내
?가 홀로 서면 남편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물론 남편이
?알아서 판단한 것과 다릅니다. 즉, 오늘날 어떤 문제를 두고 학부모 단체가 교
?사 단체와 다르게 주장하는 것은 이제 학부모들이 교사 단체에 업혀가지 않을 만
?큼 성숙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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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분열하는 것은 그만큼 구성원들 생각이 정교
?해졌다는 것이고, 미묘한 차이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정당이 질적으로
?성숙한 것이지, 동지를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헤어졌다가 아쉬울 때는 동
?거하는 기준을 서로 조정하여 또다시 만날 수 있지요. 어쩌면 더 큰 것을 위해
?서로 작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려고 지금 헤어지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