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라는 것이 있을까?

제 목
‘원래’라는 것이 있을까?
작성일
2008-02-29
작성자

우리는 ‘원래’라는 말을 일상 생활에서 자주 씁니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야.”하며 상대방과 정을 끊고 돌아설 때 씁니다. 때로는 “저 사람은 원래 저
?런 사람이니 상대하지 마라.”고 할 때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원
?래 착해요.”라며 긍정적으로 쓸 때도 있지요. 그런데 이 말들을 살펴보니 ‘원
?래’에는 상대방에게 거는 기댓값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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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기대가 가끔 배신을 합니다. 그럴 때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원래 이해심이 많았는데, 어제는 느닷없이 화를 냈어. 그럴 줄 몰랐어.”라며
?그 사람을 원망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변했다고 그 사
?람을 탓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을 두고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라는 식
?으로 비난할 때 많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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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얼마 전 오래된 친구가 제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근황을 전하지 않았더니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소식을 끊은
?것으로 친구가 오해한 것이지요. “원래 안 그러던 사람이 조용하니까 이상했
?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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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면 ‘원래’는 이쪽 기준에 맞추어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기를 기대하
?는 겁니다. 물론 자기 뜻대로 상대방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상대방이 잘못
?행동할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그 사람이 실수한 것이 아닌데도, 기댓값에 미치
?지 못하자 이쪽이 그 사람에게 실망한 것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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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전라도 사람이 그럴 줄 알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럴 줄 몰랐다.’는
?말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와 같은 말입니다. 당사자는 최선을 다해 판
?단하고 행동하는 것뿐인데, 이쪽에서 자기 기준에 맞추어 기뻐했다가, 상상했다
?가, 실망했다가 하면서 오락가락하는 것이지요. 이를 테면 소식을 자주 전하던
?것도 나이고,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않은 것도 나인데, 상대방이 그 둘을 서
?로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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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원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원
?래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아내가 남편을 두고 ‘이 사람
?은 원래 나부터 챙겨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아내는 그동안 남편을 자기 입맛
?대로 길들인 것인지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은밀히 구속한 것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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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도 수없이 속을 뒤집어 놓는 남편, 자식, 이웃을 두고 ‘원래 그런 사
?람’이라고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지요? 경상도 사람의 속성이 있기나 한 것인지
?요? 아직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기 입맛
?에 맞으면 사랑하고, 불편하면 짐짓 모른 체한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