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제 탓, 안 되면 조상 탓
2004년이 이제 거의 다 끝났습니다. 올해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아주 힘든 한 해
?였지요. 저도 즐거웠던 일보다 어려웠던 일이 더 많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때 그렇게 할 걸.”하고 반성하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도 후회하고 각
?오를 다졌으니 앞으로 제가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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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일이 잘 풀리면 사람들은 그 현재를 지속하려고 과거와 초심을 잊
?기 쉽습니다. 그러나 먹고 살기 힘들 때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디가 어떻게 꼬
?였는지를 찾아보게 됩니다. “잘 되면 제 탓, 안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에
?는 일이 잘 안 풀리는 원인을 과거에서 찾아보려는 사고 방식이 잘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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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신문 만평을 보고, 눈물이 나더군요. 일제 시대 친일파 자손들이
?오늘날 더 떵떵거리며 살고. 독재에 빌붙어 민주 인사를 고문하던 사람들이 지금
?도 큰 소리를 치는가 하면,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협
?박하는 세상을 풍자했어요. 이런 부조리가 판치는 것이 가슴 아팠고, 우리가 과
?거의 과오를 너무 소홀하게 다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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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때 독립 운동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독립군 식구들이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다 뺏기고, 집안 대
?가 끊어져 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미군이 이라크에서 어떤 만행을 저지
?르는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어떻게 학살하는지를 보면 일제 시대를
?상상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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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뺏은 땅과 지위를 일본은 친일파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지금 친일파 후손
?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밑천이 된 땅이 바로 그 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방
?후 친일파를 처단하고, 친일파 재산을 빼앗아 독립군 자손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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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행히도 그런 절차를 밟지 못해, 친일파 후손들이 지금도 틈만 나면 부
?끄러운 줄 모르고 재판을 걸어 자기 조상이 소유했던 땅을 물려받으려 합니다.
?이런 풍토를 우리 사회가 용납한다면 우리 자손들은 부모가 친일하지 않은 것을
?원망하고, 독재에 빌붙어 살지 않은 것을 비난할 겁니다. 말하자면 최근 고등학
?생들이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수능 점수를 올리려 하는 것도 끝이 좋으면 과정을
?묻지 않는 우리 사회 풍토를 따른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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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어느 당 대통령 후보 아들 병역 문제가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최근
?에는 연예인과 야구 선수들 병역 비리가 밝혀졌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병역 비리
?를 저지른 사람과 가족은 공인으로 행세하기 어려울 겁니다. 또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고 광주 사태를 민주화 운동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그
?러니 앞으로는 총칼로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있다 해도 이제는
?수많은 곳이 광주가 되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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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되짚는 것은 이렇게 현재에 교훈을 주어, 사람 사는 기준을 뚜렷하게 바
?로 세우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새삼스럽게’가 아니라 ‘늦었지만 지금
?이라도’ 과거를 제대로 되짚어 우리 사회에 이제는 더 이상 편법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겁니다. 그래야 지금이라도 친일파 후손들이 자기 조상을
?부끄러워할 테고, 자기 조상이 남긴 ‘더러운’ 땅을 포기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