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손가락을 씻으며

제 목
더러운 손가락을 씻으며
작성일
2004-01-15
작성자

제 주변에 있는 분들이 ‘나중에 경제적 여유가 되면 좋은 일 하며 살겠다’라
?는 말을 많이 합니다. 둘러보면 믿는 종교에 상관없이 그런 마음으로 사는 분들
?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분은 구체적으로는 노인들을 위해 복지 시설을 운영하
?겠다고 하고, 어떤 분은 소외된 고아를 위해 살겠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도 언젠가 때가 되면 미혼모 여학생을 위해 뭔가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
? 기계톱에 다쳐 붕대로 싸맨 손가락을 엊그제 의사 몰래 풀었습니다. 보름이 넘
?었는데 아직도 욱신거리고 근질거려서 상처에 바람이나 쐬어주자는 생각으로 붕
?대를 풀었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싸맨 탓에 손가락 마디가 잘 구부러지지 않고,
?붕대로 싸맸던 곳에는 허연 딱지가 덮여 있었습니다. 한 동안 씻지 못한 곳이지
?요. 그래서 붕대를 푼 김에 따뜻한 물에 불려 그 손가락을 박박 씻었는데, 그
?한 손가락에서 나오는 때가 아주 많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쓰면서 무심했지
?만, 다른 손가락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씻으니 때가 붙어 있을 리 없지요.
?
? 잠깐만 쓰지 않아도 뼈마디가 굳어지고 때가 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몸
?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문득 마음 속으로 짚이는 것이 있었습니
?다. 우리는 가족들에게 잘해야지 하면서도, 언젠가 잘해 줄게 또는 대박이 터지
?면 한 턱 낼게 하며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며 사는 것이 아닐까? 우
?리는 친구와 이웃에게 따뜻하게 대해야지 하면서도, 벌여놓은 일들이 안 된다 또
?는 오는 정이 곱지 않아서 못해준다 하며 자기가 하지 않는 것을 남 탓으로 돌리
?며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러는 사이 마음이 굳어지고 때가 끼어서, 나중에는 하
?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닐까?
?
? 그러니 나중에 뭔가 잘 하겠다, 언젠가 한 턱 내겠다는 소리는 자칫하면 지금
?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결심일지 모릅니다. 어쩌
?면 평생 안 하고, 평생 못하니까 그런 말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것인지도 모르
?지요.
?
? 다친 손가락을 다시 싸매며 사랑도 매일 실천하지 않으면 마음이 굳어지고 때
?가 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금 콩 반쪽이라도 서로 나누는 것이 나중에 더
?큰 것을 주는 공덕과 무게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작은 것이
?라도 실천하며 살려고 합니다. 있을 때 잘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