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톱에 손가락을 다쳤지만

제 목
기계톱에 손가락을 다쳤지만
작성일
2003-12-31
작성자

며칠 전 제가 난로에 땔 장작을 자르다가 기계톱에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순식
?간에 벌어진 일이고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에 놀랐지요. 급히 병원 응급실에 갔습
?니다. 다행히 뼈와 신경은 다치지 않아 열세 바늘을 꿰매고 병원문을 나섰습니
?다. 치료비는 3만 4천 원, 약값 1천 원. 갑자기 벌어진 사고로 치자면 정말 싸
?게 수습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뒤로 날마다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비로 5천
?원을 냅니다. 왕복 버스비 또는 주차비가 오히려 더 비싼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동네에 널린 병원, 처방전대로 약을 조제하는 약사가 있기 때
?문이지요.
?
? 제 오른손 손목에 상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던 아주 어릴 때였는
?데, 어느 겨울 날 펄펄 끓는 물을 손목에 쏟았습니다. 순식간에 손목에 물집이
?생기고, 쓰리고 따갑고 화끈거렸습니다. 그때 우리집에서 어린 저에게 해준 것
?은 화기를 빼야 한다고 차가운 소주에 손목을 담그라는 것뿐이었지요. 그날을 그
?렇게 보냈습니다. 밤새 너무 아파서 어린 제가 다음 날 아침에 부모님께 병원에
?가자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민간 요법으로 치료
?하였고, 지금껏 그 상처가 흔적으로 손목에 남아 있습니다.
?
? 지금 부모라면 고통 받는 어린 자식이 안쓰러워서 한 밤중에라도 병원에 갈 겁
?니다. 그러나 60년대 서민들 주머니 사정으로는 병원 문턱을 넘기 어려웠습니
?다. 어쩌다 병원에 가도 부모는 의사 앞에서 주눅이 듭니다. 이 모양이 될 때까
?지 뭐했냐고 젊은 의사가 나이 많은 부모에게 반말로 호통을 치는 게 예사였지
?요. 그래서 그 당시 넉넉지 못한 집 자식들은 무릎이 깨지거나 머리통이 찢어지
?는 정도는 그냥 흙으로 피를 쓱 닦아버릴 일이었지, 병원 갈 일은 아니었습니
?다. 지금 기성 세대의 무릎, 머리, 팔꿈치에 한두 개씩 있는 상처는 그런 결과이
?지요.
?
? 그런 세상이 오늘날 이렇게 바뀐 겁니다. 종합 대학교마다 의대와 약대가 있어
?한 해에 수없이 많은 의사와 약사를 배출합니다. 외국에서 의대를 졸업해도 일정
?한 과정을 거치면 국내 의사로 인정합니다. 자격증이 있으면 의사와 약사로 취직
?할 수 있으며,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곳에 병원 또는 약국을 차
?릴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의료 보험 제도를 도입하여 국민들한테 평소 조금씩 돈
?을 걷어두었다가 아픈 사람이 생기면 치료비를 대줍니다. 말하자면 이런 여러 제
?도가 얽혀서 서민들이 아플 때 환자로 대접받는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지요.
?
? 새해에는 이렇게 사람 대접받는 제도가 많이 정비되어 살맛나는 세상이 되었으
?면 좋겠습니다. 신용불량자 400만 명을 40만 명, 4만 명으로 줄이는 제도도 도입
?하고,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하면 쉽게 집을 장만할 수 있게 하고, 어중간한 나이
?에 퇴직하여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집안이 어려운 아
?이들일지라도 넉넉히 먹고 배우고 치료받을 수 있어야겠지요. 나이를 먹는 것과
?무슨 일을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배려하는 제도도 만들고, 어디까지 배웠는
?지 또는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로 차별하지 않으며, 여자와 남자 또는 외국인과 내
?국인을 구별하지 않는 제도도 만들고, 한 번 부자가 되었다고 그 재산만으로도
?자손 3대가 놀고 먹게 해서도 안 됩니다. 새해에는 누구에게 미루지 말고 이 모
?든 제도를 우리가 나서서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