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파밭에서

제 목
11월 파밭에서
작성일
2003-11-26
작성자

거대 야당은 대통령의 국정을 시시비비하며 목청을 돋웁니다. 이에 맞서야 할
?여당은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갈라서더니 함께 살던 사람들답지 않게 서로 헐뜯
?습니다. 부부가 헤어지면 더 무섭다는 말이 짠하게 와 닿습니다. 게다가 이라크
?에 우리 국군을 파병하는 것인지, 대통령 재신임 투표를 할 것인지, 부안에 핵폐
?기물장을 죽어도 설치하겠다는 것인지 어느 것 하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
? 지난 11월 초, 옆집 아저씨네 파밭을 보니 잡초가 무성하였습니다. 저야 농사꾼
?이 아니니 아저씨가 바쁘신가 보다 했지요. 옆집 아저씨는 이렇게 밭에 잡초가
?무성하도록 내버려둘 분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파밭에 잡
?초가 무성하도록 내버려두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
? 11월 햇볕은 아침에 해가 떠서 하루종일 내리 쬐어도 여름날에 비하면 한 줌밖
?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11월에는 파가 그 햇볕을 받고 위로 크지 않고, 굵기
?만 키워 겨울을 나려고 한다는군요. 그때 농사꾼은 잡초를 내버려두어야, 파가
?잡초를 시샘하여 키를 키운다는 거지요. 잡초보다 커야 한 줌 햇볕이나마 제대
?로 쬘 수 있으니까요. 옆에 있는 잡초가 자라면 파는 잡초보다 키를 더 키워야
?합니다. 결국 파는 몸집을 불릴 새 없이 키를 키우지요. 그러다 때가 되면 잡초
?는 뽑지 않아도 서리가 내려 다 죽습니다. 파는 추위에 강하니 멀쩡하지요. 그렇
?게 잡초가 죽고, 뽑혀 팔리고 남은 파만 겨울을 납니다.
?
?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 고통 속에서 그 시련을 이겨나갈 때 오
?히려 쑥쑥 자랍니다. 실제로 큰 일을 겪고 나면 고통의 크기만큼 성숙합니다. 부
?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이 깊어지고, 죽을 병 때문에 큰 고비를 넘기면서
?관대해지고, 부부로 살며 서로 싸우면서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지요. 그
?런 이치로 따지면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잡초처럼 나를 자극하고 힘들게 한다해
?도 오히려 고마워해야 합니다. 내가 너 때문에 크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할겁니
?다.
?
? 그러니 지금 여러 가지로 나라가 시끄럽지만, 이 일이 끝나면 더 큰 시민, 더
?성숙한 사회가 될 겁니다. 지금은 한 줌 햇볕을 받으려고 온갖 잡초와 파가 함
?께 섞여 아우성을 치고 있어 시끄럽게 보일 뿐이지요. 그렇게 본색을 드러내며
?파도 자라고 잡초도 자랍니다. 때로는 파밭에 잡초가 있는 것인지, 잡초밭에 파
?가 있는 것인지 헷갈릴 겁니다. 그러나 파는 파이고, 잡초는 잡초이지요. 지혜로
?운 농사꾼처럼 그 어지러운 밭을 눈여겨보세요. 그리고 선거 때 우리 시민들이
?서리가 되어 한 방에 잡초 같은 후보를 죽이고 파를 남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