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들지 말지어다

제 목
‘시험’에 들지 말지어다
작성일
2003-09-26
작성자

?대중 목욕탕에서 옷을 벗고 알몸으로 화장실에 가면 평소에 잘 나오던 것들이
?머쓱해하며 세상 보기를 꺼립니다. 옷장을 열고 팬티를 꺼내 입는 시늉을 해야
?비로소 평소대로 일을 치르지요. 차이라고는 팬티 한 장일 뿐인데, 몸뚱이가 지
?난 수십 년 동안 옷에 길들여져 내 몸이면서도 알몸이 낯선 것이지요.
?
? 옛날에는 군대에서 취침 전 인원 점검을 할 때 상급자한테 많이 맞았습니다. 어
?쩌다 그 날 점호를 담당한 상급자가 그냥 넘어갈라치면,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
?러다 한 밤중에 느닷없이 집합시키는 것은 아닌지’ 싶어서 불안했지요. 결국 이
?쪽에서 맞을 짓을 해서 상급자한테 얻어터지고서야 발을 뻗고 잡니다. 늘 얻어맞
?고 살면 맞는 것에 길들여져 맞아야 불안하지 않습니다.
?
? 요즘 우리 사회 일부에서 대통령을 마구 뒤흔듭니다. 원칙과 소신이 없다느니.
?언행이 가볍다느니, 아무 것도 모른다느니 하면서 갖은 트집을 다 잡습니다. 심
?지어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고, 툭하면 탄핵하겠다는 소리도 합니다.
?취임 1년 동안 지켜본다는 관행도 오래 전에 다 깨졌습니다.
?
? 그러고 보니 우리가 그 동안 너무 무거운 대통령에 길들여진 것은 아닌가 싶더
?군요. 결단하고 고뇌하는 대통령만 보았지, 기타를 치거나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
?을 본 적이 없었지요. 우리가 퇴임 후에도 이웃과 평범하게 지내는 대통령을 부
?러워했잖아요. 선진국에는 그런 지도자가 많았고, 지금도 그런 수상이나 대통령
?과 함께 살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막상 그런 서민적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놓
?고, 지금까지 익숙했던 대통령과 많이 다르니까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
? 그래서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하이에나처럼 끈질기게 달려듭니
?다. 어떤 때는 ‘시험’에 빠뜨리고 그 유혹에 넘어가면 비난하려고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야, 대통령. 이래도 화 안나니, 이 정도면 힘을 쓸 때도 되었잖아. 원
?래 대통령은 마구 힘써도 되는 자리야. 아쭈. 잘 참는데. 상고 출신이 별 수 있
?어. 그럼 그렇지.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잖아. 네가 대통령은 무슨 대통령이야.
?
?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이 시련을 잘 견디는군요. 아니, 여태껏 우리에게 익
?숙했던 대통령들이 사실은 군림하던 대통령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것 같군요. 새로운 세상에 맞추어 지금 모습에 사람들이 익숙해질 때까
?지 느긋하게 꾸준히 가겠다는 것 같습니다.
?
? 그래서 특히 여태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 더 불안해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루하루를 못 견딜 것 같은데, 아직도 대통령 임기가 4년 더 넘게 남았으니 얼
?마나 심란하겠어요. 물론 그렇게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잘 나가던 사람들은 자기
?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권위적인 대통령을 업고 떵떵거리며 살 때 우리 서민들
?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생각지도 못하지요.
?
? 그러니 그 사람들이 불안해서 못 견뎌 하거나 말거나, 자꾸 매맞을 짓을 하거
?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자고요. 그 대신 우리 같은 서민들은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묵묵히 제 앞가림만 하자구요. 순리는 서민 편이거든요. 시대를 거슬러 올
?라가자는 사람들은 조만간 제 풀에 꺾이게 되어 있어요. 알고 보면 그 사람들이
?임자를 잘못 만났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지금 상황이 아주 달콤하고 고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