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밥퍼, 랩퍼”를 보았어요…
2000년도 다 저물어 가는 12월 30일 토요일 오후 3시,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
서 “밥퍼, 랩퍼”를 보았다. 원래 이 뮤지컬은 대학로에서 매일 한 차례 이상 공
연하여 두 달 가까이 지속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복사골 문화 센터에서 단 한 차례, 그것도 공짜로 공연하는 것이다… 부천
의 문화 예술인은 역시 저력이 있단 말이야… 대단한 팀을 불러오고…. 그 덕
분에 우리 네 식구가 모처럼 고급 문화를 맛볼 수 있었다… ^__^
“밥퍼 랩퍼”에는 여자 네 명이 등장한다..
아이에 집착하는 마흔 살 과부,
가난한 독신 소설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이혼녀,
돈 때문에 사랑없이도 사는 유부녀….
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벗어나려고 여러 모로 노력하지만 결국 아무도
벗어나지 못한다. 서로 맞지 않을 것 같은 네 여자가 모여, 우리 사회 남성 중
심 문화에 맞서보지만 모두 좌절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여자들은 자기 자신들
이 얼마나 자식, 남편 등에 얽매여 살았는가를 깨닫는다. 그래서 뮤지컬 끝쯤에
서 신나게 노래하고, 가슴 속 깊이 응어리진 것들을 내뱉으면서 아주 당당해진
다.
이 극에서 “밥퍼”가 남성들이 여자에게 요구하는 말로 남성 문화를 상징한다
면, “랩퍼”는 ‘그 짓을 안하겠다, 나는 노래하겠다, 내 하고 싶은 것을 하겠
다’는 뜻이며, 여성 홀로 서고자하는 욕구를 드러낸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남
성 중심 문화를 거부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연극을 보며 나는 “여성들이 남성을 적으로 보아서는 안 될 텐데” 하
는 것을 느꼈다. 남성 중심 풍토에서 남성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가 남성이 여성보다 생활하기가 훨씬 편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거기
서 거기일 뿐이다.
즉, 오늘날 남성 중 극히 일부가 남성을 맘껏 누리며 살고 있으나, 그 나머지 남
성들은 여성의 사회적 몫까지 감당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
분 남자는 “돈 버는 기계”일 뿐이다…
오히려 이 뮤지컬을 “여성 대 남성”으로 보지 말고, “사회적 약자와 강자”로 놓
고 보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들은 생존하기에도 바빠, 개성을 키우거나 취
미를 누리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결국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사회적 약자는 돈도 없고, 재주도 없고, 할 수 있는 것
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뮤지컬 끝에 가서 여자들이 용기를 내어 전의를 다지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그 정도로 계속 실패하면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헤어나지못하고 절망하고 만
다… 작가가 용기를 냈으면 하는 희망을 담은 것 같다…….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말라고….
그러나 작가는 개인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기 전에 먼저 사회 구조에 대해
서 이야기했어야 한다. 지금 같은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사회적 약자가 희망을
품지, 이대로 계속되면 사람들은 희망을 지닐 수 없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
라고 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힘을 모아 사회를 바꾸어 나가자고 해야 훨씬 설득
력이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