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에 가서 살려면…
사이판에서 채소를 길러보면 어떨지요? 가이드 말로는 사이판에서는 채소가 전
혀 안 된다고 하대요. 한인 주택가에서 본 것인데, 승용차 지붕에 채소를 올려놓
고 파는 사람이 있더군요. 물론 시장에 가면 수입 채소가 많습니다. 그런데 소고
기보다 비싸요. 소고기는 엄청 싸요.. 주택가에서 채소 팔던 사람이 아마도 한국
인(또는 중국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용하게 채소를 가꿔 파는 것을 보면 한국
(중국) 사람이지 싶더라구요…
처음에 보면 사이판 땅이 비옥한 것 같아요.. 일 년 내내 여름(26도에서 30도
사이, 습도는 높아요 80%안팎.. 후덥지근한 날씨)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오고… 그래서 숲에 들어가면 풀과 나무가 무성해요… 그런데도 채소가 안 된
대요. 땅이 용암으로 되어 있고, 석회질이고… 가이드 말로는 채소를 길러 시장
에 내고, 음식점과 호텔에 납품하면 떼돈을 벌 것이라고 하대요…
그러니 우리 나라 농사꾼이 사이판에 가서 채소를 키울 수 있다면…. 땅에서
재배할 수 없으면 수경 재배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은데요….. 아주 가능성이 없
는 것은 아닐 것 같더군요. 주택가에서 차를 세워놓고 채소를 파는 사람들도 어
떻게 해서든 키운 것 아닙니까? 대량 생산을 못하는 것뿐이지…
한국 사람들은 대개 장사를 하더군요…. 슈퍼마켓(자동세탁소 겸업), 옷가게
(여름 옷만 팔겠지요?), 아동복 가게, 침구류, 음식점, 머리방, 포커룸, 팬시,
학원, 여행사, 옷수선, 한방, 렌트카, 잡화, 노래방, 비디오, 제과점, 자동차정
비, 에어컨판매, 유치원, 안경점…
그 중에서 식당이 제일 많습니다. 다른 업종은 한국인 가게가 한두 개인데, 식
당은 한 30개 이상….. 컴퓨터 가게도 있더라구요.. 들어가 보니 한 군데에서
본체도 팔고 소모품도 팔고, 수리도 하고, 게임방도 하고, 간단하게 컴퓨터 교육
도 하더라구요… 본격적인 컴퓨터 학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컴퓨
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사회가 아닙니다.. 사이판에 사는 한국인이 만든 홈페이
지 “사이판 로얄(www.saipanroyal.com)”에 가면 교민들이 운영하는 가게 리스트
와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있는 가게가 거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56K 모뎀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으니, 느리지요… 알아보니 우리 정도 가정용 고속망을 끌어들
이려면 월 400-500만원은 지급해야 하나봐요…. 호텔 예약도 전화나 팩스를 이
용하는 것 같더라구요.. “인터넷 방 예약”은 몇 년 뒤에나 가능할까… 인터넷이
나 컴퓨터 활용 여건이 초보적이지요. 이웃에 있는 괌(비행기로 30분 거리)에는
고속망이 있어서 온라인으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 같더군요….
아, 한국인이 운영하는 봉제 공장 큰 것이 몇 개 있어요. 버스로 여공들을 출퇴
근시키고요. 법으로 정한 최저 임금이 한 시간에 3.05불(3500원)이라고 하네
요… 같은 일을 해도 사이판 주민은 그보다 1.5배 정도 된다고 해요…. 자기
네 백성은 돈을 더 줘라 이거지요.
그러고 보니 병원이 하나도 없어요…. 치과 병원은 있던데…. 다른 병원은 없
어요… 큰 사고 날 일도 없지만, 위독한 환자를 수술할 병원도 의사도 없답니
다. 한국 의사가 사이판에 가면 큰 돈을 벌지 않을까요?
한국 사람들이면 뭐든 6개월에서 1년이면 자리 잡을 것 같대요. 물론 재주가 하
나 있어야지요… 자동차 수리든, 제빵이든, 요리든… 장사는 언어가 통하지 않
으므로 자리 잡으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국 사람을 상대로 장
사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한국 교민이 얼마 안되기 때문에 아주 힘들 겁니
다….
인구가 6만쯤 되는데, 그 중 2만5천명이 차모로 원주민입니다. 씀씀이가 크고
낙천적으로 살아요.. 어쨌든 사이판이 미국령(원주민 자치 정부가 있음)이므로
미국 정부에서 매달 생활비를 타서 잘 쓴대요… 다음 달에도 또 받으니까 저축
이라든가 하는 개념이 없나 봐요… 그 사람들을 상대로 슈퍼마켓을 하는 한국인
이 많아요… 필리핀 사람이 취업하여 사이판에 한 1만명쯤 살고요… 나머지 사
람들 중에서 중국인은 7천명, 일본인 7천명, 한국인 교민은 3천명쯤 된다고 합니
다. 조선족 동포도 많이 살아요…
여행 도중 백인은 다섯 명도 못 보았습니다. 백인 관광객도 거의 없어요… 백
인이 있다면 이곳에 근무하는 미국 고위 공무원, 또는 변호사, 회계사라네요…
어쩌다 있다면 한국이나 일본에 상주하는 백인이라고 하더라구요… 우리 나라
에 흔한 미군도 이곳에는 없어요… 그러니 이곳에서 살려면 원주민, 아시아 주
민, 아시아 관광객(특히 일본)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겁니
다….
사이판에서는 영어와 일본말을 잘 하면 적응하기가 더 쉽습니다. 원래 원주민말
과 스페인 말 섞인 것을 썼는데, 지금은 영어가 공용어입니다. 그래도 백인이 없
어서인지 거의 일본이나 다름없는 것 같더라구요…. 쇼핑 센터와 거리에는 일본
인 가게 주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넘쳐 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2차대전이 끝나
고 사이판을 미국에게 뺏기기 전까지 일본이 30년 정도 사이판 주인이었어요…
스페인이 독일에게 팔아 독일이 15년간 가지고 있었는데, 독일이 1차 대전때 패
전한 뒤 1914년 일본이 독일한테서 강제로 빼앗다시피 하였다네요..
일본 사람들, 이 섬을 미국에게 뺐겨 눈알이 나오겠더라구요… 2차 대전후 유
엔이 미국에게 사이판 신탁 통치를 위임하였습니다. 그리고 1978년 공식적으로
미국 자치령이 되었습니다. 원주민은 지금 전부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미국 군인
은 원주민 자치 정부가 반대하여 주둔하지 않으나, 사이판 앞 바다에 미 군함이
1년 내내 떠 있습니다. 사이판에서 비행기로 30분 떨어진 괌에는 미 공군기지가
있고요.
미국은 이 땅을 먹고 싶어 미국으로 귀속시키려 하는데, 사이판 원주민들은 독
립을 원하는 것 같다고도 하고… 합하네, 마네 하며 지난 10년 뜨겁게 논의해
왔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