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기 1- 애절하게 끌어 안던 러시아 연인…

제 목
러시아 여행기 1- 애절하게 끌어 안던 러시아 연인…
작성일
2001-07-5
작성자

러시아에 다녀온 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습니다. 감동과 충격을 잊기 전에 그곳
을 정리한다 하면서도 밀린 일을 보느라고 여전히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생
각 같아서는 러시아 문화, 정치, 사회…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싶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몰라 그냥 돌아다닌 날짜대로 행적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글 중간
에 제가 느꼈던 러시아를 기록하지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행할 때 제게 시계
가 없어서, 무슨 일이 있었던 정확한 시각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여행을 떠나기 전날 6월 6일까지도 개인적으로 일이 있어서 밤 늦게야 집에 들어
왔습니다. 다행히 저는 집사람과 이번 여행을 함께 떠나기 때문에 집사람이 여행
에 필요한 짐을 다 꾸려 놓았더군요. 우리 부부는 러시아에 대해 아는 것이 별
로 없어서, 여름옷과 가을옷을 함께 넣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 가보니 가을
옷이 전혀 필요 없는, 선글라스와 선탠 오일이 필요한 뜨거운 여름이었습니다…

6월 7일 아침, 아는 기사님이 택시를 몰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인
천 공항까지 요금 통행료 포함 대절 4만원) 우리 부부에게 인천 공항은 처음인지
라, 공항 구경 삼아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섰습니다. 잘 닦아놓은 도로
덕에 공항까지는 천천히 가도 40분쯤 걸리더군요.. 인천 공항은 푸른 하늘을 배
경으로 날 듯이 가볍게 서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규모와 깔
끔함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정부에서 동북아 허브 공항을 주장하더니, 정말 규
모 면으로 대단한 공항입니다… 돈을 많이 들이고 공도 많이 들였으니, 앞으로
이 공항이 통일 한국의 관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항 구내에서 환전도 하고, 러시아 관광 안내 책도 사고, 전화 카드도 샀습니
다. 그러나 러시아 여행 내내 그 전화 카드를 쓸 수 없었지요. 수도인 모스크바
근방에서 전화 카드를 쓸 수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돌아다닌 하바로프스크나
이르쿠츠크에서는 러시아 국내끼리 연결되는 공중전화 밖에는 없었습니다… 동
전을 넣는다고 우리 나라처럼 아무 데서나 국제 전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
라구요..

러시아로 떠날 일행은 모두 14명. “열린사회문화연구소”라는 사설 아카데미 회원
들이거나, 회원들이 아는 사람들이었지요… 연구소 소장, 기획실장, 정치학 박
사, 기자, 주부, 방송작가, 수필가, 보건소 공무원, 시민단체 사무국장… 직업
이 아주 다양했습니다. 물론 저는 백수였지요.. @.@; 그래도 우리는 부부가 동행
하여, 다른 분들이 부러워했지요… 말이 났으니까 말인데, 우리가 올해로 결혼
한 지 20년이 됩니다… 평소에 러시아를 가보고 싶은 참에 20년 기념 여행 삼
아 떠났습니다… 부럽징…. *.*

만나서 몇몇 아는 분끼리 인사를 하시지만, 대부분 서로 모르는 처지로 만났습니
다. 그래도 한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는 인연으로도 이내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
였지요… 정말 말대로 그게 금방 그렇게 되었어요… 나이가 웬만큼 있는 분들
이라, 남들을 쉬 이해하고 배려하시더군요… 뜻이 맞는 분들과 여행을 하는 것
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물론 그 반대일 때는 고
통이 크겠지요….

인천 공항에서 오후 3시에 러시아 달라비아 항공사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
기에 오르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
일… 영화, 음악은커녕 타고 보니 우리네 시골 직행버스만도 못합니다… 의자
가 푹 꺼진 것도 있고, 안전 벨트가 없는 곳도 있고… 서로 얼굴을 보고 웃었지
요. 비행기랄 수도 없는 낡은 기계를 보고, 우리 일행은 모두 러시아 조종사의
비행 기술만 믿었어요… ^0^

나중에 귀국하는 날 저도 러시아 사람들 대열에 동참했습니다만, 러시아 사람들
은 비행기 안에서 술 먹고, 주정하고, 담배 피고, 떠든다고 하더군요.. 물론 점
점 자리가 잡혀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마지막 날 러시아 비행
기 안에서 자리에 앉아 술 먹고 담배 피는 자유로움(?)이 저는 상당히 즐거웠습
니다..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50분(러시아 시간으로 7시 50분). 인천에
서 두 시간 반 거리에 있습니다. 하바로프스크는 사할린 섬 옆 대륙에 있는 도시
이지요… 참 허망했어요… 따지고 보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도 우리는 동쪽, 서쪽, 남쪽이 바다라서 나가지 못하고, 북쪽이 가로 막혀 위로
다니지 못하면서, 아예 우리 나라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 왔습니
다. 섬나라가 아니면서 섬사람처럼 살았지요.. 아래 사진은 하바로프스크 공항
대합실에서 우리 일행이 입국 수속을 기다리며 찍은 것입니다…

왜정 때만해도 만주며, 시베리아는 기차로 금방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고등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곳이지요.. 우리네 역사에서도 일본보다 그곳이 훨씬
더 우리와 밀접하게 부대끼며 애환을 같이 하던 곳이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러시아, 만주, 연변이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그만큼 우리들이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잘게, 쪼잔하게 살아왔다는 뜻이겠지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바로스크 일대는 온통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 넓은 벌판에 듬성듬성 서 있는 집, 울창한 숲과 심하게 몸을 뒤틀고 있는 강
물 줄기… 제가 아내에게 물었지요… 무엇을 심었을까? 무슨 농사를 지을까?
글쎄….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초원일 뿐이더군요… 땅이란 무엇을 심어야 하
고, 노는 땅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그 넓은 땅에 사는 러시아 사람
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필요한 만큼만 쓰면 되는 땅을 무조건
다 활용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였으니, 우리네가 땅에 품고 있는 집착이 얼마
나 천박한 것인지? 아래 사진은 기차를 타고 가며 찍은 초원 모습들입니다. 가운
데 사진에는 작은 점들이 바로 소입니다……

하바로스크는 넓고 크고 조용한 도시였습니다. 인구는 65만이라고 하니, 우리 나
라 중소도시보다도 더 한적한 곳 같습니다. 한국계는 1만 명으로 보는데, 사할
린 거주자, 중앙 아시아에서 이주한 사람, 북조선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남한
쪽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업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 이외에는….. 도심에
서는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도시 밖에는 땅집(단독주택)에서 삽니다..
거리에 나무가 울창합니다.. 1649년 탐험가 하바로프가 이곳을 찾아 16세기 중엽
부터 극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858년에 하바로프스크라고 하였다니, 도시
역사가 꽤 오래된 곳이라서, 꽤 묵은 나무가 많았지요… 아래 사진은 버스 안쪽
에서 하바로프 동상을 찍은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숙소인 센트랄 호텔에 짐을 풀고 가이드인 한복순 여사를 따라, 전
기 버스를 타고 아무르 강으로 갔습니다… 아무르 강은 하바로프스크 외곽에 있
는데 유람선을 타고 대충 한 시간을 돌았으니, 아주 큰 강이지요… “아무르 강
의 잔잔한 파도”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지요.. 이 강으로 중국과 경계를 이룹
니다…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말을 계속 듣다가, 우리들끼리 이
국적인 풍경을 벗삼아 어둠이 다가오는 것을 말없이 배 위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외국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지요… 동행한 박사님이 러시아의 역
사를 설명해 주어, 앞으로 여행할 러시아를 어떤 측면에서 관찰할 것인지를 가늠
해 보기도 했습니다…. 왼쪽 사진에 있는 사람이 제 아내입니다…

숙소에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우리 숙소는 주 공산당위원회가 있는 레닌 광장 옆
에 있었는데, 텅빈 광장에는 젊은 연인 몇몇만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곳
은 다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낮에 짐을 풀 때 그 광장에 있던 분수에서 물을 뿜
고 있었지요… 가족과 연인들의 휴식 공간이랄까… 어린아이들은 롤러블레이드
를 타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와 할아버지도 있었고, 젊은 연인끼리 앉아
서 이야기하고…. 그 광장 옆에 의과대학이 있어서인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이도 많았지요.. 우리네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였어요…

그 밤중에 우리 일행은 호텔 옆에 있는 “B52″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갔습니다. 입
구에서 웃옷을 벗어주고 번호표를 받습니다.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나중
에 돌아다녀 보니 러시아 모든 곳이 대개 그런 식으로 운영합니다. 그도 그럴 것
이 만약 겨울에 두꺼운 옷을 고객이 식당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면 그 옷을 어떻
게 하겠어요…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뭐 이런 데가 있어” 하는 식으로 기분나
빠했지요… 뭐가 이렇게 까다롭냐는 거지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대한 교
만함이랄까… 장사하기 싫으면 관둬라 하는 식으로… 미국에서였다면 그런 맘
이 들었을까? 시커먼 양복을 입고, 건장하게 생긴 젊은이들이 우리 일행 소지품
을 하나하나 검색하고 들여보내더군요…. 물론 그 일도 기분 나빴지요… 그러
나 어쩝니까? 어떨 때는 지들(마피아)끼리 서로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인다니…..

시원한 멕시코 맥주(코로나 엑스트라) 로 하루 종일 지친 심신을 달랬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바와 댄스홀과 카지노를 겸해 장사하는 곳이었지요… 늘씬하고
훤칠한 러시아 남녀 젊은이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더군요… 러시아 사람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을 만큼 소득 수준에 비해 음식값이 비싼 곳이니, 아마 그
젊은이들은 하바로프스크판 오렌지족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 식당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날 식당에서 마신 맥주 한 병
이 500원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삘맹이”라는 만두국을 시켜 먹었습니다. 작은 항아리에 한 잎에 쏙 들어
갈 만한 만두를 넣고 곰탕처럼 끓인 국이지요. 소고기국도 아니고 돼지고기국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분이 양고기 같다고 하더군요… 러시아에서 처음 맛본 이국
적인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빵을 먹었습니다. 흑
빵이라고 하지만 정작 “연한 갈색” 빵이고, 이빨이 부실한 사람은 먹을 수 없을
만큼 질긴 빵이고, 밀가루 냄새가 나대요.. 누구 말로는 러시아가 내세우는 삼
대 자랑 거리(흑빵, 보드카, 여자)중 하나라고 합니다. 사진 위쪽에 빵이 있고,
오른쪽에 맥주병이 있네요….

밤 12시가 되어 숙소로 돌아 왔지요.. 러시아 젊은 연인이 우리 숙소 현관을 두
드리다 경비원이 문을 열어 주지 않으니까 힘없이 돌아서더군요… 그리고 현관
앞에서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사랑하
는 남녀가 그날 밤 어디서 보냈을까? 왜 손님을 받지 않았을까? 외국인 전용 호
텔인가? 그렇지도 않던데… 내국인은 허가를 받아야 잘 수 있는지? 그걸 안다
면 그 젊은 남녀가 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텐데… 애절하게 끌어안던 그 모습이
마치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