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 – 만물 수집가에서 열린 수집가로
만물 수집가에서 열린 수집가로
조윤주(포항여자고 2학년)
현재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는 민주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국민들의 의견이나 의식 등을 사회 정책에 반영하여 국민들의 힘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이나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해 여러 집단과 사회 단체를 조직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나 자료를 찾는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는 우리들의 주변에는 복잡하고 헤아릴 수 없는 주장과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다. 더군다나 현대 사회에서는 제3의 물결이라고 불리어지는 시대이다. 제3의 물결이란 정보 사회, 정보화의 비중이 증대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정보와 의견이 봇물처럼 흘러나오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
먼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귀로 들리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신라 시대의 승려 원효는 더 깊은 불교적 신앙심과 수양을 위해 당으로 유학을 가던 도중 한 동굴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곳에서 잠을 자던 원효는 갈증을 느끼게 되어서 옆에 있던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게 되었다. 그 물을 마신 원효는 물이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 자신의 갈증을 달래어 주던 물이 해골 속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안 원효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토와 메스꺼움이 치밀어 올랐고 그때 그는 중요한 것을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깨달음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와 의견 주장 등을 받아들일 때에도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귀와 눈을 닫고 그 속에 담긴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자신에게 약이 되는 것을 찾아가는 능력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정보와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주 소량이다. 많은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약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열린 수집가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 많은 정보와 의견,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는 만물 수집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만 수집하면 된다. 즉 우리는 열린 수집가이면서도 능동적이고 분별력 있는 수집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보의 구렁텅이 속에 살고 있다. 자칫하면 우리는 정보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정보에 빠져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잃어버리고 살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우리의 눈과 귀를 그 정보 의견 등의 넝쿨 속에서 참된 장미를 발견 할 수 있도록 사용해야 하겠고, 능동적인 참여와 분별력으로 쓰레기 더미 속에 장미를 피워 낼 수 있어야 하겠다. 정보에 쉽게 흔들리기보다는 정보를 이용해서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동적 수집가가 되도록 하자.
같이 생각해 봅시다
논술 시험이 생긴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아직 논술글에 익숙지 않다. 그것은 고3이 될 때까지 논술 글쓰기를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초등학교 때 글쓰기 학원에 다녔다 해도, 글을 쓰기 위한 예비 단계를 거친 것이지, 본격적으로 논술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 학생들이 논술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말하자면 고3인데도 논술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다.
이번 달에는 고2 학생들 글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이 글은 현대 사회에서 정보 소비자의 자세를 논하라는 문제에 답한 글이다.
조윤주 학생은 논술글 한 편을 모두 네 단락으로 처리하였는데, 서-본-결 원고량이 1:2:1쯤 되었다. 글 성격에 따라 원고량이 달라지지만 이런 비율이면 본론이 허술한 편이다.
다른 학생은 서-본-결을 1:3:1로 안배하여 본론에 자기 생각을 더 넉넉히 담을 수 있었다.
조윤주 학생은 그만큼 서론과 결론 단락이 장황하다. 서론에서 현대인과 정보의 관계를 드러내려고 하였는데, 직접 관련이 없는 민주주의와 제3의 물결을 설명하였다. 현대에 와서 정보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왕정 시대와 공산주의 국가, 또는 제2의 물결 시대에도 정보는 많았으며, 필요했다.
말하자면 현대가 과거와 달리 어떻게 정보가 넘쳐나고, 현대인이 얼마나 정보에 휘둘리며 사는지를 언급해야 하는데, 엉뚱한 것에 매달리느라고 장황해졌다.
본론 1인 둘째 단락에서는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를 너무 믿지 말라고, 본론 2인 셋째 단락에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찾으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본론 1에서 주장하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신라 시대 원효를 예로 들며 설명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도 낭비지만, 현대인과 정보의 관계를 1300여 년 전 고승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늘날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너무 믿어 낭패한 예를 쓰거나, 감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본론 2에서 두드러진 어휘는 열린 수집가와 만물 수집가이다. 단락 맨 끝에 있는 문장처럼 능동적이고 분별력 있는 수집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 외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근거를 대지 않는다. 그냥 ‘잘 하자, 잘 해야 한다니까, 정말 잘 해야 해.’만 반복할 뿐이다. 즉, 강조만 하였지 설득하지 못하였다.
결론 단락에서는 본론에서 논의한 내용을 요약하였다. 본론에서 근거 없이 당위만을 강조하여 결론에서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부담스러우니까 ‘구렁텅이, 넝쿨, 장미, 쓰레기더미’ 같은 비유로 처리하였다. 본론 2에서도 구체적인 단어 대신 ‘약’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논술은 구체적인 어휘로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글이다. 그러므로 비유를 독자가 각자 유추하면 진의가 왜곡되기 쉽다. 결론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말로 전망하는 내용을 담아 결론 단락으로 삼아야 한다.
결론 끝 문장 서술어를 ‘되도록 하자, 기여하기를 바란다’처럼 청유와 명령으로 끝낸다. 이것은 논술글 독자(채점자)가 교수라는 사실을 잊고, 신문 사설처럼 독자를 훈계하고 계몽하려는 버릇이 드러난 것이다.
둘째는 상투적이고 뻔한 내용으로 대충 글을 쓴다. 즉, 잘 알지 못하는 문제거나, 미처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인데 무작정 글을 쓴다.
셋째, 어려운 말을 쓰고 산뜻한 비유를 동원하여 멋있게 쓰려고 한다. 논술글은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글이다. 멋있게 쓰면서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