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키가 크려고 그런 꿈을 꾸었나보다
꿈을 꿉니다…
꿈속 교실에서 지금은 이름도 잊은 옛동무와 옛선생님을 봅니다.
그때 그 천진한 얼굴과 다정한 모습으로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 옛날처럼 어린 나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발이 많이 아파?
응, 오른쪽 발이 날카로운 양철 판에 스쳐 상처가 났어… 약을 듬뿍 발랐지…
그 애에게 위로 받고 싶어서 발을 처들어 보입니다…
저런… 많이 아프겠구나…
꿈 속에서는
아직도 시험을 치릅니다.
선생님, 난 많이 아프니까 시험을 안 봐도 되지요?
맞아. 꼴찌를 한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
난 시험을 안 볼 거야..
그러면서도 결국 시험을 치릅니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친구를 안타까이 바라보다가, 감독 교사 몰래 친구 시험지를 베끼다가, 엉터리
답을 쓰다가…
옛날 공부 잘 하던 때를 그리워합니다.
이게 아닌데 하며…
숲을 방황합니다.
캄캄한 숲 속, 나뭇가지와 덤불, 날파리와 풀벌레, 길도 없는 산…
그 속에서 다시 학교를 찾습니다.
길을 찾아 헤매다가…
산너머를 보고 싶어, 하늘을 훨훨 날아 산 위에 오르고…
산 꼭대기에서 보는 학교는 까만 콩처럼 아주 저 멀리 작게 보입니다…
아무도 없는 산에는 적막이 흐릅니다….
여기가 싫어… 저리로 빨리 가자…
갑자기 길이 없어집니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 걸린 나무 줄기 하나..
발 하나 겨우 디딜만한 너비..
여기를 건너다 발을 헛디디면 죽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힘들 수가…
왜 이렇게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을까?
이건 꿈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시련이 있을 수 없어…
꿈이 분명해…
건널 수 없어…
이리로는 건널 수 없는 거야.. 불가능해…
낭떠러지로 몸을 던질 거야…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어야 해..
꿈이면 나는 안 죽지.. 그리고 이 지독한 꿈에서 깨어날 거야…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집니다…
꿈이 아니었구나.. 내가 죽는다…
끝없이 아득한 추락에 소스라쳐 놀랍니다.
눈을 뜨면 낯익은 물건들이 보입니다.
팔다리를 만져보고, 몸을 뒤척여보고 다시 눈을 감는 모습까지 꿈에는 보입니다.
이렇게 살면서
나는 가끔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꿈인지 구별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린 저에게
네가 키가 크려고 그런 꿈을 꾸었나보다
라고 하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