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형 사립고를 반대한다…-송승훈

제 목
자립형 사립고를 반대한다…-송승훈
작성일
2001-06-18
작성자

이름 : 송승훈 ( gurumbae@hitel.net) 날짜 : 2001-06-18 오후 2:43:48 조회 : 156

제 목 : 자립형 사립고를 반대한다

– 교육부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2003년부터 개교하겠다고 했습니다.
– 현장교사의 한 사람으로 의견을 적습니다.

“현장교사는 자립형 사립고를 반대한다”

몇 년째 평준화를 해체하자는 제안이 한쪽에서 계속 제출되었다.
그 제안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소박한 수준의 논리로, 공부 잘하는 학생은 그런 학생끼리,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은 또 그런 학생끼리 모아 놓고 따로 가르쳐야 수준에 맞게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시장 논리로 교육을 개선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학생의 개성과 적성이 다양한데 학교는 획일적이어서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소비자’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평준화를 해체하면 사립학교에 들어가는 돈을 공립학교에 투자할 수 있어서 낙후된 공교육 전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주장이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첫째 주장은 소수를 살리고 다수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끼리 모아놓으면 당연히 그 학생들은 더욱 발전한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끼리 모아 놓아도 그 수준에 맞게 쉽게 교육을 받으니까, 그들 역시 발전할까?

이 물음에, 우열반을 경험해본 교사라면 대답은 모두 똑같이 나온다.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놓으면, 그 학생들은 더 못하게 되지, 나아지는 경우란 거의 없다.

결국 소수의 똑똑한 학생들은 더욱 학교에서 성공하게 되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예전보다 자기 발전에 성공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이 보통 학생들과 섞여 있으면그냥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일 뿐이지만, 그런 부적응 학생들끼리 모아 놓으면, 인간적 패배감과 그밖에 안 좋은 점들이 부정적인 상호작용으로 증폭되어서 정말 심각한 일들이 그 학급에서 일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회 통합에 큰 문제를 장기적으로 발생시킨다. 인간교육의 측면에서 보아서, 공부 잘하는 엘리트 학생도 대다수의 보통 학생들 사이에서 자라날 때, 인간적으로 축복 받는 인성이 형성되지 않을까.

청소년기에 중요한 것이 학업 성취, 오직 이것 한가지라고 믿지 않는다면, 그 시기에 다양한 인간 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둘째 주장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욕망을 과소평가하는 낭만적 이상주의다. 학교선택권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주었다고 하자. 그러면 학교는 자유롭게 다양해해서 학생들이 자기 희망에 맞는 학교를 찾아갈 수 있게 되고, 학교는 수요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개혁을 서둘러 전반적으로 학교교육이 개선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학력에 따라 임금 차이가 심하게 나서 학력사회라는 비판을 듣는 우리 사회에서 부모들은 개성보다 자식의 경제적 안정을 먼저 따진다. 이 점은 비평준화를 유지하고 있는 지방 지역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학교선택권이 있는 지역에서 지방명문고가 지금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보자.

고급스럽게 교육과정을 소화하고 있는가? 학생 개성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전체주의 국가에서 전투특공대를 훈련시키듯 획일적 강제 입시교육을 가혹하게 실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비평준화 지역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학교들은 어떤가. 수준에 맞게 교육을 해서 학생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는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변두리 학교에서는 학교 붕괴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심한 수준으로 일어 나기에, 수업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사실을 조금만 조사하면 우리는 다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 선택권은 다양한 개성의 다양한 실현으로 귀결되지 않고, 상위 학교는 입시학교로 가속되고, 하위 학교는 슬럼화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셋째 주장은 산수 계산을 잘못해서 온 착각이다. 국가가 사립학교에 재정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다. 그래서 자립형 사립고를 허용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을 공립학교로 돌리면 엄청난 예산이 지원되는 효과를 얻는다는 말은 기막힌 묘수처럼 들린다. 처음 이 논리를 접했을 때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산수를 따져본 뒤 그 계산이 잘못임을 알고 허탈해했다. 우리 나라 고등학교 가운데 절반이 사립이다. 그러면 그 사립 가운데서 재정을 자립할 수 있는 학교는 몇 %나 될까? 아마 10%쯤 될 것이다. 나머지 사립학교들은 재정 자립이 절대 불가능하다. 자 따져보자. 자립형 사립고를 허용할 때, 공립학교로 넘어올 예산이 얼마인가? 전체 고등학교 가운데 50%인 사립학교에서 10%가 자립할 수 있으니까, 지금 예산에서 5%의 예산이 증액되는 효과가 있다. 이 정도로는 공교육이 절대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이 주장은 우리의 사립학교들이 어떤 재단을 갖고 있는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지금 우리 나라 공교육은 분명히 획일적이고 답답하다. 이 체제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는 좋다. 하지만 그 방향이 평준화 해체여서는 안 된다. 평준화라는 큰 틀이 유지된 채, 성적에 따라 갈라지는 학교가 아닌, 적성과 특기에 따라 진학하는 ‘특성화(요리-컴퓨터-만화-예술)’ 학교를 많이 세우는 쪽으로 제도의 획일성을 보완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통제하는 교과서를 자유발행제로 바꾸면, 교육 내용은 충분히 다양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고 시장 논리에 따라 ‘성적과 돈’으로 학교를 선택하도록 하면, ‘지적-경제적’으로 우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승리하기가 쉬워지지만, 약자는 어떤 운명이 될지 아무도 장미빛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일년에 1000만원쯤을 등록금으로 내고, 영국의 사립학교는 2500만원쯤을 낸다. 영국에서는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들 가운데 7%인데, 그 7%의 학생들이 옥스퍼드 같은 명문대 입학생의 50%를 차지한다.

미국이나 영국은 우리 나라에 견주어서 사회 보장 제도나 공립학교 시설이 훨씬 좋은데도 그런 상황이다. 고교평준화 해체에 대해, 교육을 통해 부모의 계급 불평등이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문제제기는 우리 처지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 걱정을 ‘없는 자의 어쩔 수 없는 불평’이라고 가벼이 지나치는 사람은 힘이 센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나는 민주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평준화 해체에 찬성할 수 없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약육강식이어서 우리를 사람답지 못하게(不仁) 하기에 비교육적인 일이, 현실에서 실리적 성과를 가져오지도 못하기에 실속도 없는 정책이다. 거기에다 실질적인 빈익빈부익부 정책이어서 “교육은 시민의 기본 인권”이라는 공교육의 이념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기까지 한다.

그 정책을 선택하는 사람은 현실을 낭만적으로 보거나, 현실에서 힘센 자의 이익을 옹호하거나 이 둘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