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우리교육’ 좌담회 – ‘학교운영위원회 중간평가’
중등 <우리교육> 4월호에서 ‘학교운영위원회’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지난 3월 13
일 서울에서 몇 사람이 만나 좌담회를 하였습니다. 참가한 사람은 고승애(서울
불광중 학부모위원), 장인홍(서울 구로중 지역위원), 한효석(부천정보산업고 교
원위원), 진용주 기자, 정우진 기자였습니다. 자세한 것은 <우리 교육> 2000년 4
월호를 보세요.
아래는 그 중에서 제 발언만 모은 것입니다.
학운위가 둘로 나뉘어 싸우는 편이라는 말에
한효석: 저는 차라리 교장이나 학부모, 교사들이 다 정치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드네요. 다 얻으려고 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양보할 줄 아는.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전혀 양보가 없으면 어느 정도는 싸울 수밖에 없어요.
가령 법대로 하면 50대 50이어야 하는데 교장 선생님이 100을 쥐고 하나도 양보
를 안하니까 나중에는 ‘그럼 우리 학교운영위원이 거수기냐’ 이렇게 되는 거죠.
지금은 교장 선생님도 한 5년을 해보니까 지친 거예요. 안 된다고 하는데도 끊임
없이 학부모와 교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니까, 교장들이 모여서 무슨 얘기를 하냐
면, ‘아, 더러워서 이제 교장도 못하겠다.’ 그렇게 그분들도 지치니까 조금씩 내
놓는 거 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 서로 다치지 않고 조화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얘기가 가
능해지는 거지, 초창기에는 그렇게 싸우지 않을래야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교장에 따라 학교가 달라진다는 말에
한효석: 그 부분이 참 답답하죠. 예를 들어 똑같은 제도인데 교장이 누구냐에 따
라 잘 돌아가는 학교가 있고, 안 돌아가는 학교가 있다면, 이건 문제가 있는 거
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제도적으로 시스템에 관해서는 하나도 건드리
지 않고 하늘에서 좋은 교장이 떨어지기만 바랐던건 아닌가 반성할 필요가 있어
요.
나쁜 교장이라도 나쁜 짓을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중요한데 우리는 그
런 제도적인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안하고 교장 선생님만 좋은 분이었으
면, 교장 선생님이 마음을 열면 잘 될텐데… 그렇게 자꾸 사람 탓만 한다는 거
죠.
예산을 짤 때 갈등이 심했다는 소리에
한효석 : 예 결산 문제, 참 어렵죠. 그런데 제 경험으론 동결이고 10% 인상이고, 그
런 게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부천 어느 학교의 경험인데, 학교 예산을 앞에 놓고 종
이 두 장 갖다 놓는 거예요.
위에 각각 학생, 학교 써놓고 예산의 항목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이거는 학생 위
한 예산이다, 이거는 학교 편하자는 예산이다… 쓰는 거죠.
그래서 절반 이상이 학생을 위한 예산이면 이건 학생 위한 학교인 거고, 절반도 안되
고 30%다, 20%다 하면 이건 학생 빙자해서 학교 굴러가는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인상
을 하더라도 학생을 위해 예산안을 짜는 게 중요하지, 올려 주자 말자 가지고 싸우지
말았으면 해요. 어차피 돈이 많을수록 아이들한테 돌아가는 게 많다면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사실 어디에 쓰겠다는 항목이 나와야 작년에 비해 몇% 올리자는 게 나오는 건데, 그
게 아니라 관내 행정실장 협의회에서 9.8% 올리기로 했으니 그렇게 올려 주세요, 이
런 건 말도 안 되는 거죠. 구체적인 예산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총액만 올
려 달라는 거니까.
지역 사회와 학운위의 관계에 대해
한효석: 교사들 중에도 재주 있는 분들이 참 많아요. 사진, 컴퓨터, 비디오 등등. 속
한 학교에서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더 넓게 볼 수도 있죠. 전에 부천시에
서 사회 교육 강사를 할 사람들을 등록 받는데 학교는 조사를 안 해요.
그래서 담당자한테 전화를 했죠. ‘지금 대학 나온 수천 명의 교사가 부천 지역에 있
는데 그 사람들은 조사 안 하냐. 예를 들어, 국어 교사라고 해도 우리말을 바로 쓰는
쪽으로 어떤 단체나 기관에 가서 강의를 할 수도 있고…. 굉장히 귀한 자원들인데
왜 안 하냐?’고 했더니, 선생님들이 그걸 하실 수 있을까요 라고 되묻더라고요.
그러니까 지역에서조차 교사들을 활용하려 하지 않고, 또 교사들은 자기 취미 범주
에 머물러서 지역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래서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그 지역의 역량
을 높여주는 게 바로 시민 단체의 역할이겠구나 생각했죠.
청소년 문제를 구로에서는 교사와 같이 하고 있다는 말에
한효석: 그럴 땐 학운위가 아니라 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 운영위원회도 가능하겠는
데요. 사실 청소년들이 갈 데가 없다고 하지만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오라는 데가
없는 거죠.
예를 들어서, 학교는 오후에 건물이 비게 돼요. 반대로 학원은 오전에 건물이 비어
요. 교회는 일요일은 바쁘지만 평일은 또 건물이 비어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학운위가
주축이 돼서 시민 단체와 협조한다면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요.
시민 단체가 미약한 곳에선 옆의 교회, 혹은 아파트 부녀회, 뭐 이런 식으로 손잡으
면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은 거죠.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학교에서 교장하고
대립해서 소모적인 논쟁하는 것, 이런 건 이제 끝내고 지역의 주축으로서의 학운위가
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끝이 없는 거죠.
학부모끼리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에
한효석: 교장 선생님들도 옆의 학교들에 전화를 해봐요. 근데 여기도 저기도 이렇게
하고 있다…… 그러면, ‘아, 이 학부형들끼리 무슨 얘기가 됐구나’하고 직감적으로
알아요. 그래서 함부로 할 수 없구나 생각하고. 그래서 최소한 주변의 학교부터라도
연대를 해야 하는 거죠. 그 정도만으로도 큰 효과가 나요.
여담이지만 교장 선생님들은 나쁜 것도 같이 가더라구요. 거긴 얼마 걷었나….. 이
런 것도 서로 맞춰요.
고승애: 같이 짐을 지고 가야 하니까…(웃음)
한효석: 그래서 우리도 같이 가면 힘이 되요.
학운위원들끼리 경험이 전수되느냐는 질문에
한효석: 전 ‘그런 게 바로 교육/시민 단체의 몫이 아닐까 해요. 신임 학원위원장에게
강의하는 자리 같은 것 말이에요. 사실은 제대로 된 교육청이라면 거기서 해야겠죠.
학부모들는 소극적이라는 소리에
한효석 : 지금은 어떤 면으로 학부모들이 제일 불리한 위치에 있어요. 학교장들은 교
장단 회의가 있기 때문에 어떤 학부모가 있는데 어떻게 해라, 하는 식으로 서로 경험
을 전수해요. 교사들도 전교조 등을 통해서 경험이 전수되고. 그런데 학부모들만 전수
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 부분이 앞으로 과제일 것 같아요.
교사와 학부모가 힘을 모으자는 발언에
한효석 : 교사들도 호흡이 잘 맞는 학부모 위원들을 만나면 참 기운이 나요 그런데 엉
뚱한 얘기하고 친(親)교장 발언이나 하고, 그럼 지치죠. 자기 아이들은 저런 식으로
하겠다는 데 내가 뭐 구태여…., 이런 식이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교원 위원은 학
부모 위원이 하기 나름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얘기긴 한데, 한가지 덧붙이자면, 전에 어느 전교조 선생님에게 이런 얘기
를 했어요. 그 분이 학교 교원위원인데 교장선생님과 참 많이 부딪쳐요. 그래서 그 선
생님에게, 당신 아이의 학교 학부모위원으로 가라, 그러면 말하기도 쉽고, 그 학교 교
장은 자기 교사가 아니니깐 함부로 대하기 힘들고…
학교 안에서 매일 생활하면서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아이의 학교에 학부모위원
으로 가는 거죠. 그리고 우리 학교는 다른 분이 와서 바꿔 주시면, 서로 훨씬 힘이
덜 들겠죠.
학운위에 꼭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효석 : 전 그 부분 하나만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크고 작은 일에 최소
한 더불어 상의할 수 있는 구조만 되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좀 나쁜 길
로 간다고 해도 상의해서 간다고 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거든요. 결국에는 교장
선생님에게 또 화살이 돌아가는데 ‘내가 이 학교를 책임지고 끌고 나간다’가 아니
라, ‘우리가 이 학교를 상의해서 이끌어 간다’는 사고와 구조가 자리잡으면 된다는 거
죠.
교사가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한효석 : 저는 그런 건 패배주의라고 생각해요. 더 슬픈 거예요. 우리가 그래봤자 뭐
바뀌는 게 있느냐는 거죠. 그런데 이런 생각은 우리 교사들이나 학부모, 시민들이 가
진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예요. 10년 전, 5년 전, 지금은 또 매번 다르거든요. 전
에는 판문점에서 총 한 방만 쏴도 나라가 벌벌 떨었지만, 요즘은 바다에서 몇 날 교전
을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된 것, 전 이게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진전이라고 생각해
요. 학교 안에서 일에 부딪칠 때도 그런 믿음과 낙관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학운위원장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에
한효석 : 전 소수의 활동적인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 나가는 학운위라고 해도 괜찮다
고 생각해요. 왜냐면 그분들이 소수일지라도 바르게 나가면, 그분들이 없어진 뒤에는
말없는 다수들이 후퇴하느냐, 그렇지 않거든요. 소수의 역량 있는 분들이 학운위를 끌
고 나갔다고 하더라도, 뒤로 후퇴는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지난 번에는 학부모
위원장이 수학 여행 답사를 선생님과 같이 갔고, 그래서 학생들 반응이 좋았다.’고 하
면, 그 뒤에는 안 가면 비판받는 거죠. 그래서 소수의 명망가가 학운위를 좌우한다고
해도 바르게만 간다면 말없는 다수가 뒤로는 가지 않는다는 거죠.
학운위에 대한 기대
한효석 : 정권이 바뀌고 개혁적인 대통령, 장관이 들어오면 바뀌지 않겠느냐 하는데,
우리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한계가 있습니다. 장관이야 1년, 2년이지만 교사와 학부
모는 10년, 20년인데… 우리가 성숙해서 구조를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 주
지 않는다, 그래서 천천히 가더라도 같이 가서 조금씩 바꾸자, 저는 그렇게 낙관적으
로 봐요.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는 말에
한효석 : 학운위든 지역 네트워크든 시민 단체든 경계해야 할 것은 관(官)을 닮아 가
는 거라고 봐요. 한 동안 제가 속한 모임에서 1년에 몇 건, 몇십 명, 몇백 명을 모아
놓고 뭐했다, 역량 있는 시민 단체다, 이걸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런데 강좌를 해보니
깐, 올 사람만 와요. 실제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다 집에 있고, 이미 의식 있는 분
들, 강좌가 필요 없는 분들만 와요.
그러니까 ‘어느새 우리도 관이 되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에는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우리가 가자, 그렇게 바뀌었어요. 방법이 유연해진 거
죠.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열 명만 모으면 우리가 갑니다, 이렇게요.
그러니까 더 좋아요. 촌지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건 먼 얘기지만 우리가 남양우유를
먹었는데 이번에 학교에서 서울우유로 바꾼대요….. 하는 식으로 사안이 아주 구체적
이라 얘기하기도 쉽고, 얘기를 하면 그분들이 피부로 받아 들여요. 아, 이렇게 하면
교장 선생님이 꼼짝 못하겠구나, 그렇게 느낌이 딱 와서 하는 일도 있지만, 일상적인
활동은 세밀하게 학부모, 교사, 학생들에게 다가가 끈을 만들어 놓는 좋은 방법이에
요.
물론 큼직큼직하게 연대해야 하는 일도 해야죠. 그것도 이러한 일상적 활동이 뒷받침
된다면 그 끈들만 모으면 효과적으로 힘을 모을 수 있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