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희숙 양 – 현실을 떨치고 미래를 개척하는 젊은이
정말, 저는 출세한 거예요. 여상을 졸업하고 중국에 공부하러 가다니… 꿈같지
요.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희망을 갖고 살라고요… 그래요.. 언젠
가 제가 더 잘 되면 학교에 가서 강연할 날도 있을 거예요..
좀더 출세하면 모교에 가서 중국 유학 경험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그러마 약속하며 한 말이었다. 구양은 여상을 졸업하고 1996년 3월에 부천정보산
업고 서무실 직원으로 취직하였다. 그리고 주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 사무를 보
조하다가 1999년 3월에 중국사범대학에 유학 가려고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 때 직장을 갑자기 그만 둔 것은 아니에요. 오래 전부터 공부해야겠다는 거
는.. 죽 생각했어요…..유학 갈 돈 준비하느라고 직장 생활을 한 거지요…. 틈
틈이 영어 공부를 했어요.. 우리 나라 야간 대학을 다닐까 생각을 해봤었는
데….. 외국이 낫겠다 싶더라구요… 그렇지만 미국이나 영국은 학비가 너무 비
싸고…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을 생각했어요… 일본어는 고등학교 때 배워서 조
금 알지요… 일본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닐까 생각했구요… 중
국은 학비가 싸지만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구… 그러다 결국 아는 사람이 있어
서 중국으로 결정했어요….
가보니까 한 달 생활비가… 중국애들은 우리 돈 2-3만원으로 지내는 것 같더라
구요…. 한국 사람은 300달러 정도 드나… 여기 생활비로 치면 30만원쯤 되니
까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옷을 사입기를 하나 유흥비가 들기를 하나….
그래서 그렇지요 뭐….. 북경 같은 데는 한국 사람이 많으니까 한국인을 위한
나이트 뭐다 되게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다니면 돈이 많이 들지요..
그래서 가능하면 한국 사람이 없는 데로 가야 돈도 덜 쓰고 중국말을 빨리 배우
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북경으로 많이 가는 이유가… 우리 식으로 하면 거기
에 외국어대학(북경어원학원)이 있는데 체계적으로 잘 가르치거든요…. 중국 애
들도 고등학교 때 공부를 어느 정도 해야 북경 대학에 가요… 수준이 높아
요….
저는 어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고 시절에는 몰랐지요… 우리 나라 전문
대학을 갈 수도 있었는데, 어설프게 다니느니, 확실히 배우자….. 지금 우리 나
라에서 중국어를 되게 많이 배우대요. 저는 나중에 통역관이 될 거예요. 괜찮
죠? 아주아주 어려운 길이라고 하대요. 4년 코스에요. 우리 나라 4년제 대학하
고 같아요.
중국애들은 대학생들이 공부를 우리 나라 고3처럼 해요….다…. 새벽까지 공
부를 하더라구요… 자기네들이 못산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한국은 잘 산다
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아직까지 교수 말을 다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과외를 받는데… 한 시간에 우리 나라 돈으로 한 800원정도 하나… 날 가르치
는 사람이 맨날 물어보는 게 그런 거예요. 한국은 잘 산다구… 우리는 되게 열
심히 해서 쫓아가야 한다구… 어떤 분들 말로는 우리 나라 60년대 70년대 대학
분위기하고 같다고 그러대요…
개네들 대학 가는 인원이 얼마 안 되요. 혜택을 받은 거라구 생각해요… 처음
에는 대학에 무슨 인간이 이렇게 많나 그랬었는데…. 개네들은 조금 여유가 있
고 조금 공부 잘한 애들이 온 거예요… 수가 많은 거지, 비율로는 얼마 안되
요…
거기에도 까르푸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래서 우리는 좋다구 뭘 사오고, 사
다 먹구 그러는데… 거기서 산 걸 갖다 주면서 니네 나라 거다… 그래도 몰라
요… 자기네 나라에서 이런 게 나오나 이러구….맛살 같은 거도 파는데 한 번
도 못 먹어 봤대요… 회도 그렇고요… 치즈 같은 거는 똥냄새 난다고…
아이고, 처음에는 무지하게 답답했어요. 말도 못 알아듣고…. 가족도 보고 싶
고…. 여기를 왜 왔나 싶었어요. 방황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1년 6개월쯤 되
었지요… 시험은 보는데 그래도 다 못 알아들어요. 개네들 방언도 있고요. 지들
끼리는 대충 알아듣지요. 생각해 보니까 유학은 처음 육 개월이 고비인 것 같아
요. 그때만 잘 넘기면…
구양은 부모님, 남동생 둘 모두 다섯 식구이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일로 재산
을 모두 날렸다. 그래서 외삼촌이 알려준 대로 정명여상에 입학했고, 남동생 둘
도 공고를 졸업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조용하게 지냈으며, 성적도 중간 정도였
다. 아버지는 지금 택시 운전 기사로 일한다. 엄마는 많이 가르치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해하였다. 건강을 걱정하시기는 하였지만 구양이 중국에 가는 것을 반대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된 것을 추구하지요. 특히 회사원, 공무원들
이….. 저는요, 교무실 일이 제가 오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봤어요. 제가 미래
에 어떻게 살 것인지도 생각해보구요. 사람에게는 이것과 저것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때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때를 놓치면 또 10년이 가고…… 인생의 고
비에서는 용기가 필요해요…. 저는 이 길을 후회하지 않아요..
야외 음식점에서 만난 구양은 작년보다 훨씬 몸이 야위었다. 그 동안 마음 고
생, 몸 고생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말이며 행동이 당당했다. 목표
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 내비치는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돈 벌면 엄마 아버지한테 좋은 거 많이 사드릴 거라는 구양. 지난 7월
말쯤에 귀국하여 중국으로 다시 가기 전에 학비를 마련하려고 24시간 편의점에
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났던 전원 카페는 기타 소리에 섞여 생
음악이 넘치고 분위기는 아늑했다. 그래도 구양만큼 아름답지 못했다. 젊음과 패
기는 그 모든 것을 채우고도 넘쳤다. 그리고 살아 있는 눈빛을 보면서 4년 뒤 또
는 10년 뒤 구양이 대단한 통역관이 되어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