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희망을 만들기 위해…-김영진

제 목
새해 희망을 만들기 위해…-김영진
작성일
2002-01-5
작성자

이름 : 김영진 ( seulk@chollian.net) 날짜 : 2002-01-05 오전 8:36:13 조회 : 166
참고 주소 : www.edu.co.kr/seulk

새해 희망을 만들기 위해…

김영진
(군산영광여고 교사)

벌써 2002년입니다. 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

축 처진 어깨가 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엔 좋은 마음, 좋은 생각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쁜 사람이 벌받고, 좋은 사람이 복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정의’가 뭐 별겁니까? 나쁜 ‘힘’이 힘빠지는 해가 되었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새해엔 희망을 즐겁게 말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부둥켜 안으려면 생각을 제대로 하고 살아야겠지요.

김동춘 교수의 말을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그렇다.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청렴하고 식견 있는 관리가 장관의 자리에 올라서기 어렵고, 뜻과 비전이 있는 정치지망생이 국회의원이 되기 어렵고, 소신을 그대로 말할 용기가 있는 판사가 법조계의 수장이 되기 어렵고, 기자로서 자존심을 가진 언론인이 신문사의 책임자 자리에 올라서기 어렵다.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이유로 감옥에 가거나 심한 탄압을 받았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주변에서 촉망받는 인물이었으나 `바른 말’하다가 해직되고 이후에 어려운 삶을 살아간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인들이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사태의 본질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색깔’로 뒤집어 씌워 사람과 조직을 매장하고, 지역주의의 잣대로서 사람을 배제하고, 돈 있는 사람만이 `자리’를 얻게 만든다면 피라미가 잉어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소인'들이 판치는 세상> 일부, <한겨레> 등록 2001.12.20.(목) 23:09 )

우리 나라가 이런 나라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적당히 썩어버리지 않고는 안락과 출세가 따르지 않지요.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 다 잘 압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그 놈은 참 바르고 깨끗한 놈인데, 세상을 너무 몰라.”를 계속해야 합니까?

올해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 이런 사람들을 대통령으로 뽑아놓을지도 모릅니다. 읽어보시지요.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여야 유력 대선주자의 집에는 신년하례객들이 장사진을 칠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이날 서울 종로구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가회동 빌라에는 세배객을 받기 시작한 오전 11시부터 발걸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금배지를 단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수십 명의 모습이 눈에 띄었으며, 중앙당 당직자들, 그밖에 정치권 안팎의 추종자로 보이는 인사들을 합치면 방문객은 줄잡아 1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이 총재가 자리를 잡고 앉은 거실 주변은 물론이고 실내 복도, 현관 앞 계단까지 세배 대기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당직자들은 현관의 신발 정리에서부터 줄지어 선 세배객들에게 “조금만 기다리시라. 곧 인사 드릴 수 있다.”며 질서 유지에 바빴다.

이날 이 총재는 오전 10시 당사에서 단배식을 갖고 “한나라당 정권의 창출”을 다짐했다. 따라서 소속 국회의원들의 경우엔 단배식에서 이미 새해 인사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거듭 ‘눈도장’을 찍겠다는 듯이 어김없이 자택으로까지 몰려들었다.

서울 자곡동의 이인제 민주당 상임고문 집도 비슷했다. 수백 명의 지지자와 추종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이 고문의 집 주변에서는 때아닌 주차 전쟁이 빚어졌다. 일부 측근들은 대문으로부터 1백 미터 앞까지 진출해 방문객의 주차 안내를 맡고 나섰다.

이 고문 집에서도 측근을 자처하는 국회의원들이 거의 하루 종일 머물면서 내방객 접대를 자청했다. 국민의 대표라는 의미의 ‘선량’인지, 특정인의 ‘집사’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하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유력한 대선주자의 반열에 끼지 못하는 인사들의 집에도 하객들이 찾았지만 다소 썰렁한 분위기였다.

새해 첫날에 존경하는 지도자의 집을 찾아 인사를 나누는 일 자체는 미풍양속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날 목격된 풍경들에선 권력자쪽에선 세 과시, 그리고 방문객들의 얼굴에선 권력을 향한 강렬한 추종 의지가 엿보였다는 점에서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다. 더구나 이날의 풍경들은 과거 3김의 전성시대에 3김씨의 집에서 늘 연출되던 그런 것들이었다. (<새해 대선주자의 집 풍경>, 박창식 기자, <한겨레> 등록 2002.01.02.(수) 20:33)

동교동계, 상도동계가 저물고 가회동계, 자곡동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군요. 권력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저 부나방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새해 아침은 또 훤히 밝았습니다.

이런 오야붕들을 대통령으로 뽑아놓으면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저 많은 꼬붕들을 국회의원으로 지자체장으로 뽑아놓고 우리 정말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정치 신물난다고요? 신물나면 단물이 흘러나오게 바꾸어야지요. “나는 정치 같은 거 모른다.”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 비겁한 사람, 무식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거나 진배없습니다. 어디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있습니까? 제 눈앞에서 호랑이가 ‘어흥’ 하고 덤벼들려 하는데, 호랑이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호랑이가 없어집니까? 욕만 하지 말고 우리가 제대로 된 사람을 찾고 뽑아야 합니다. 우리 그렇게 하게요. 우리가 희망을 노래하지 못한다면 우리 자식들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바른 정치 의식을 갖고 ‘정치적’으로 삽시다.

우리 나라를 “부정부패가 ‘기본’인 나라”라고 말하는 강준만 교수의 ‘생각’을 퍼나릅니다. <경향신문>에 실린 글인데 참 시원합니다. 읽어보세요. 썩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부정부패가 ‘기본’인 나라를 만듭니다. 이제부터는 꼭 깨끗한 정치인에게 정치를 맡깁시다. 이제 붓뚜껑으로 희망을 만들어 봅시다. 올해는 모두 함께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산영광여고 김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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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가 ‘기본’인 나라

부정부패!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겹다. 거의 모든 국민이 갖고 있는 생각일 게다. 부정부패의 발원지는 썩은 정치다. 거의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정치를 깨끗하게 확 바꿀 수는 없을까? 있다. 유권자들이 모든 선거에서 후보의 청렴성 기준으로 표를 던지면 된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기존 썩은 정치의 패러다임에서 통용되는 ‘인물론’ 중심으로 표를 던진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정부패를 개탄하고 저주하는 유권자들이 부정부패 척결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표를 던지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다섯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유권자들은 부정부패 척결보다는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 표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한 반감엔 지역주의가 가장 크게 작동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대 정당 구도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유권자들은 부정부패 척결보다는 연고와 정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한국인의 타고난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총장선거에서조차 연고와 정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건 상식이 아닌가.

셋째, 유권자들은 부정부패 척결보다는 자기 지역의 발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 지역에 돈을 한푼이라도 더 끌어오게 하려면 깨끗한 사람은 도움이 안된다. 기존의 ‘돈 정치’ 잘 하는 사람이 바람직하다.

넷째, 유권자들은 일상적 삶에서 부정부패에 ‘적당히’ 연루돼 있기 때문에 부정부패의 정도를 문제삼는 것일 뿐 실은 부정부패 자체에 대해선 분노하지 않는다. 즉, 유권자의 대다수가 기존의 ‘총체적 부패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다섯째, 일부 유권자들은 선거를 돈 뜯어먹고 향응을 제공받는 ‘부패 축제’로 여기기 때문에 부정부패 능력이 가장 뛰어난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이들은 자신들을 ‘큰 도둑’의 돈을 뜯어먹는 작은 의적(義賊)으로 여기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상 열거한 다섯가지 이유는 결코 웃자고 한 소리가 아니다. 그게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요, 진실이다. 유권자들의 그런 심리와 행태를 귀신같이 꿰뚫어보고 있는 정치인들은 부정부패를 멀리 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오히려 크게 해 먹어야 크게 놀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정부패하려고 애를 쓴다.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정말 깨끗한 정치인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빛이 나지 않는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치판 ‘게임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하면 기본 법칙을 마스터한 프로들이 방해를 놓는다. 자신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걸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덫에 갇혀 있다. 역사와 구조의 탓이긴 하지만 뿌리부터 썩었다. 그러나 사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민중 찬가’를 불러대기에 바쁘다. 민중은 현명하고 양심적인데 정치인들만 죽일 놈들이라는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식의 진단으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와 언론계에서도 아직까지 촌지 파문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어찌 정치판만 썩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썩게끔 하는 것이 과거 독재정권들의 정권유지법이었으며 지금 우리는 그 누적된 역사와 구조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그런데 왜 그 신문을 구독하세요?” 도덕이 무너졌다고 개탄하는 분께 내가 드린 질문이다. 사람들은 도덕과 무관한 기준으로 신문을 구독하고 선거에 임한다. 그래 놓고선 도덕이 무너졌다고 개탄한다. 쇼 하지 말자. 부도덕한 신문이 잘 팔리고 부도덕한 정치인이 출세하는 나라에서 부정부패는 국민윤리다.

강준만(전북대 교수)
<경향신문> [정동칼럼] 최종편집 2001년 12월 26일 1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