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글 – 이은희
이름 : 이은희 ( ) 날짜 : 2002-03-31 오후 10:29:58 조회 : 228
사람을 알아 간다는 것…
날이 개어 해가 나고
비가 내려 땅이 젖네
조금도 숨김없이 다 말했거니
남이 믿지 않을까 다만 두려라.
天晴日頭出
雨下地上玄
盡情都說了
只恐信不及
한때는 사람들이 나의 말을 못 알아들을까봐, 나를 오해할까봐,
주저리주저리 설명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에서 이해의 표정을 발견할 때에야
“오해하고 있지 않구나”라는 사실에 안심하며…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될 때 다시 처음부터
나를 이해시켜야하는 수고로움.
그건 꽤나 설레이는 작업(?)일 때도 있다.
나또한 그 사람에 대한 탐색과 이해에 동참하기 때문에.
“넌 무슨 색깔을 좋아하니?”
“혈액형, 내가 맞춰볼까?
“나는 강아지를 좋아해”
이런 기본적인 질문과 답변으로부터, 이해의 순간이 시작된다.
사람에 따라 질문이 달라지기도 한다.
“실장님 집은 몇평이세요?”
“두분이서 어떻게 만나셨어요?”
(사실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음.(–;))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설명(이라기 보다 변명)하는게 싫어졌다.
설명이라는게 꼭 “나는 이렇고 저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그 무엇.
행동이나 말투, 혹은 생각.
이런 것들은 <프리즘> 같다.
내가 늘 한가지 색깔만을 투영시키지도 않고,
상대편 또한 늘 한쪽에서만 다가오는 건 아니다.
어느날, 내가 재밌는 농담(사실 난 참 썰렁한 사람이다)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 사람은 나를 참 재밌는 사람이구나 할 것이다.
또 어느날 우울한 모습으로 울고 있는 날 본 사람이라면,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늘 그런 상황의 나를 본다면,
이 사람은 참 어두운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누군가가 나를 판단할 때
우연스럽게도 마주치는 한순간에 모든 것이 좌우될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웃고, 울고(어쩌면 자주?), 화내고,
차분하다가도 어쩔줄을 몰라하고,
재밌는 사람이 되었다가, 무척이나 지루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여러가지의 표정과 모습을 지니고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내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듯이
그들 또한 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모두에게 나를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
모두에게 솔직할 필요도 없다.
이런 (어찌보면 당연한)사실을 아는데 난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와 긴 시간을 공유하다 보면 저절로 나를 알게 될 것이다.
거기에 놀라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할 것이다.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이 서서히 서로에게 길들여질 수도 있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내가 조바심을 내며 질문을 쏟아낼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나는 그 사람의 여러가지 색깔을 알아갈 것이다.
그 사람 또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
나에 대해 오해를 하든, 말든, 나를 떠나든, 말든…
일일이 응수하는데 아주 지쳐버린 까닭이다.
내가 사람에 대해 방치하는 것은 완전한 포기는 아니다.
그 기저에는 “만날 사람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운명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지금 내곁을 떠나도, 나와 꼭 만날 사람이라면……언젠가 다시 만날거라고.
만일 지금 이게 우리의 끝이라면,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가 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쓰고 보니 <포기>같지만
내 마음속에는 “어쩌면…”이라는 <희망>이 희미하게 스며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