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석이 만난 사람 – 김만수 부천시장

제 목
한효석이 만난 사람 – 김만수 부천시장
작성일
2013-07-23
작성자

한효석 – 여월동 안골보리밥집을 정리하고, 약대오거리에 담쟁이문화원과 안골털레기 식당을 열었다.

인터뷰 – 김만수 시장

김영의 기자가 부천시장을 만나러 갈 참이라고 하여 불쑥 “그때 나도 같이 가자”고 하였다. 김만수 시장이 1990년대 초 부천 시의원으로 활동하던 때 나는 부천고등학교 교사였고, 시민 단체 일로 이런저런 인연이 있었다. 그때 김만수 의원을 부지런한 사람으로 기억했는데, 2003년 느닷없이 참여 정부 청와대 대변인으로 등장하여, 그 과정이 상당히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7월 들어 장마가 계속되었으나, 우리 일행이 시장실을 찾은 날은 모처럼 날씨가 화창하였다. 이 날은 시의회가 시장을 압박한 다음날이었다. 김만수 시장이 추천한 옴브즈만을 시의회가 거절하고, 시장이 위촉한 문화재단 상임이사를 임기 만료 두 달 앞두고 해임하라고 시의회가 촉구하였다.
어느 책에서 불통은 서로 상대방을 모르거나, 알면서 서로 자기 것을 내려놓지 않으려 할 때 생긴다고 했다. 김만수 시장은 시의회를 알까 모를까? “어린 김만수가 여기 이 자리에 오리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과학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는 혼자 노는 겁니다.(우리는 어어~ 하며 크게 웃었다.) 정치를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그때는 사람 만나는 걸 불편해 했어요.

으잉? 정치인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데 대인 기피증이 있었다니? 어쩐지 활짝 웃는 사진을 빼고는 김만수 시장은 사진 속에서 늘 멋쩍게 웃는다 싶었다.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매력이라고 느꼈는데. 시의원을 두 번 하고 시장 4년차로 접어들었으면서도, 공적인 제스처가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멋적은 웃음이 보여요. 노무현 대통령도 외국 국빈과 있을 때는 당당하지만, 시민들과 있을 때는 아주 멋쩍어 했는데 그 생각도 나구요.”

지금은 많이 극복해서 어떤 때는 너스레를 떨어요. 그래도 아직 익숙하지 않죠. 사실 지금도 힘들어요. 의례 말을 해야 한다든지, 행사 식사를 한다든지 하면요.

하긴, 일정표를 보면 시장이 그날 가야할 행사로 하루 일정이 너무 빽빽하다. 이런 크고작은 일에 팔려 정치력이 소진되는 경우도 많다. 행사 주최자는 시장님이 행사장에 얼굴을 내밀어 주었으면 하겠지만, 꼭 가야할까? 노련한 정치인조차 공직에 오래 머물면서 초기보다 판단력이 떨어지던데 말이다. “어떤 때는 낙선한 것을 축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쩔 수 없이 충전하거든요. 모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구요.”

선거에 떨어져서 충전하고 싶지는 않아요.(우리는 빵 터졌다.) 1주일에 하루라도 의도적으로 쉬려고 합니다. 휴가도 적절히 활용하고, 해외 견학을 잘 활용하면서 일상과 단절하는 거죠. 효과가 있더라구요. 애들도 크니까 서로 짐이 되요. 아내와 둘이 있으면 힐링이 안 되고 싸워요. (흐흐흐. 싸우는 게 아니라 아내가 무섭겠지.) 그냥 혼자 있는 게 좋죠.

그러고 보니 김만수 시장 가족을 본 것 같지 않다. 가족이 무심한가?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하는 건가? 대부분 정치인은 가족 역량까지 자기가 끌어다 쓰기 쉽다. 그러나 가장이라면 오히려 가족에게 자기 역량을 나눠줘야 하는 것 아닌가?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가족 선거 운동 금지법”을 만들어 선거 운동을 일체 못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마다 가족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이 왜 없겠어요. 가족도 돕고 싶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지나치게 되요. 따져보면 성인 자녀를 둔 정치인과 애가 없거나 미성년자인 정치인은 큰 차이도 있구요. 아주 불공평해요. 배우자도 선거 운동을 못하게 하는 게 낫죠.

어떤 상황에서도 되도록 가족은 뺄 겁니다. 어떤 때는 정치인 배우자가 복지관에 가서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정치인이 자기 생활인데, 자기 성공과 실패를 자기가 감당해야지, 가족의 짐으로 넘기면 안 됩니다. 다행히 제 아내는 공무원이라서 많은 부분 차단이 되어 오히려 잘됐다 싶어요.

오호라. 생각하기는 하셨군. 좋다. 확실해서 좋다. 어디까지가 가족이어야 하고, 가족의 의무인지를 분명히 아시네. 그래도 지켜볼 일이다. 나중에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지. 흐흐흐. “옛날에 시의원일 때 그 당시 시장의 토목성 사업, 전시성 사업을 많이 지적하고 비판하였는데, 지금 부천 시장으로서 김만수 하면 떠오를 만한 것을 만들고 싶은 유혹이 없나요?”

제도 또는 문화 인프라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고, 도로 건물과 기반 시설을 갖추는 것도 대단히 중요해요. 그것은 유혹이 아니라 5대5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봐요. 분당, 일산, 중동 신도시가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는데, 여기만 지하철을 안 만들었죠. 그 후 20년 동안 지하철이 이슈가 되어 지역 역량을 쓸데없이 낭비하게 되었죠. 시설 인프라 구축 시점을 놓치면 그 후유증이 오래 갑니다.

유혹이 아니라 사명감을 지닌다면 예술회관을 짓고 싶습니다. 짓는 시기를 놓쳤죠. 중동 택지 개발할 때 시청을 멋지게 졌듯이, 그때 거의 동등한 규모로 예술회관이 딱 자리를 잡았으면 지금 문화 비전을 설정하는데 편했을 겁니다. 그걸 지금 하려니 힘이 드는 거죠.

5대5. 구축 시점. 내 질문은 날카로왔는데, 이 두 단어로 노련하게 빠져 나갔다. 에잇, 내 내공이 후달린다. 하긴 이 자리가 정책 청문회가 아니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정말 궁금했던 옛날일이나 물어야겠다. “2002년 시의원 3선에 도전하지 않고,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했어요. 무슨 계기가 있었어요?”

시의원을 해보니 3선이 의미는 있지만, 지방자치라는 것이 20%자치이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시의원으로서 입지가 너무 좁았어요. 한 번 더 한다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더라구요. 의욕도 안 나구요

그러던 참에 대선캠프가 꾸려지는 과정에서 동참 요청을 받았어요. 노무현 의원이 대통령 당선 가능성은 제로였지만, 내가 시의원을 한 번 더하는 것보다 시대적으로 의미있는 시도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그쪽으로 갔어요. 그때는 노무현 의원이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죠. 대통령 안 되면 나는 뭐 할거냐 그거까지 생각하고 간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어요. 1991년에 내가 민주당 당직자로 들어갔는데, 그때 당직자 하는 일이 너무나 불안정하더라구요. 그런 고민을 이광재 선배와 상담했더니 그 당시 국회의원인 노무현 비서로 합류하라고 했어요. 그때가 1991년 말이고 그 다음 해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어요. 나는 비서로 들어갔는데, 노무현 의원이 바로 낙선하더라구요. 내가 뭣좀 해보려니까 노무현 의원이 떨어졌어!!!(이 말에 웃느라고 우리는 뒤집어졌다.) 그래서 노무현 의원과 구체적인 인연을 만들지도 못하고, 낙선 이후에 상황이 확 바뀌면서 보좌관들이 뿔뿔이 흩어졌죠.

상상해보니 우습다. 젊은 정치 지망생이 이거 괜찮은 끈이다 싶어 잡았는데, 단단히 잡기도 전에 썩은 밧줄처럼 툭 끊어졌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낙심천만. 그때는 김만수 인생 더럽게 꼬인다 싶었겠다. 흐흐흐. “그래서 부천으로 온 거예요?”

그때 원혜영 의원은 부천에서 초선으로 당선되었어요. 낙선한 노무현 의원한테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됐는데, 당신 보좌관 중에 하나 주쇼.” 했나 봐요. 그래서 나는 원혜영 의원한테 팔려가고(또다시 우리는 뒤집어졌다.), 천호선 보좌관은 유인태 의원한테 팔려가고, 성현찬 보좌관은 박계동 의원에게 팔려가면서 다 흩어졌어요. 하나씩 분양됐죠.(푸하하!) 원혜영 의원한테 팔려가면서 부천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밥장사를 해보니 음식끼리 어울리는 조합이 있고, 그걸 먹는 사람 성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보리밥집을 10년 넘게 하는 동안, 같이 온 사람끼리 또는 다른 손님과 싸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큰길 포장마차나 유흥음식점 주변에는 싸움이 잦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그 사람 성격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저는 원미 시장에서 먹는 순대국처럼 행복한 것이 없던데요.”

오징어 찌개를 좋아해요. 입맛을 확 잡아줘요. 칼칼하게 신 김치를 팍팍 썰어 넣고요. 이것처럼 맛있는 것이 없어요.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인데, 그때는 오징어가 흔해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오징어를 튀기기도 하고 삶기도 하고, 부쳐 먹기도 하고 말이죠.
아~ 괜찮아요. 기사로 쓰셔도 되요. 다른 분들이 시장님이 좋아한다고 이걸 사주고 싶어도 사주지 못해요. 단독 메뉴로 파는 데가 없어요. 아마 공장 식당에나 가야 시원한 오징어무국으로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오글거리는 거를 좋아한다. 남이 하면 에이~ 하면서도 좋아한다. 노무현 대통령님이나, 아내, 또는 옛날 선생님한테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셨죠? 지금 생각나는 분께 영상 편지를 쓴다면 어떤 분한테 쓰고 싶으세요? 한 마디 하시죠?”

아유 못해요. 진짜 너무 오글거리네요. 진심이 묻어나야 하는데, 그렇게 갑자기 감정을 짜내기는 그렇네요.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났다고 하니, 내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덕담 덧보태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루 중 시민들을 만나서 같이 웃으며 분위기가 환해지면, 기분이 좋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지를 짐작할 것 같았다.
김만수 시장은 시장실 책상위에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놓아두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공직에서 떠나면 그 대통령처럼 오징어 무국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막걸리 한 잔 하는 이웃으로 남기를 꿈꾸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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